쉬운 가사, 박진감 넘치는 서사… 귀로 보는 SF 영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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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시어터 ‘The Astonishing’
전작들 비해 메탈의 격렬함 줄고, 아리아풍의 부드러운 노래 늘어

미국 메탈 밴드 드림시어터. 왼쪽부터 존 페트루치(기타), 조던 루디스(키보드), 제임스 라브리에(보컬), 마이크 맨지니(드럼), 존 명(베이스기타).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미국 메탈 밴드 드림시어터. 왼쪽부터 존 페트루치(기타), 조던 루디스(키보드), 제임스 라브리에(보컬), 마이크 맨지니(드럼), 존 명(베이스기타).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서기 2285년. 미국 북동부는 폭군 너페리어스 황제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다. 대중에게 허용된 엔터테인먼트는 전자 잡음뿐. 노맥(NOMAC·Noise Machines)이란 비행체는 상공에서 기괴한 노이즈를 살포해 문화를 말살한다. 레이븐스킬 지역에서 반란군이 발족한다. 혁명군의 핵심은 게이브리얼. 천사 같은 노래 소리만으로 누구든 눈물 짓게 하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황제는 그의 힘을 확인하려 레이븐스킬에 당도하고, 그의 딸 페이스 공주는 한눈에 게이브리얼에게 반하는데….’

영화가 아닌 음반의 줄거리다. 미국의 5인조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드림시어터의 13집 ‘The Astonishing’(1월 29일 발매·워너뮤직코리아)은 스토리 앨범이다. 보컬 제임스 라브리에는 8명의 등장인물을 연기하고 일사불란한 밴드 연주는 관현악, 합창과 힘을 합쳐 청각적 공상과학(SF)물을 만들어낸다.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프로그레시브함’은 대개 △조성과 박자의 잦은 변화 △폴리리듬과 변칙 박자(5, 7, 11박…)의 애용 △서사적인 노랫말 전개 등의 세 가지 측면으로 표출된다. 1989년부터 드림시어터가 보여준 100개 이상의 그림(곡)은 그대로 프로그레시브 메탈 박물관을 이뤘다. 육중한 스타카토가 변박을 타고 내닫는 기타-베이스-드럼-건반 연주, 드라마틱한 노랫말과 멜로디의 총진군은 듣는 이를 비포장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리는 전차에 탑승시킨다.

드림 시어터의 ‘The Astonishing’ 표지.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드림 시어터의 ‘The Astonishing’ 표지.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The Astonishing’은 청각적 자극만으론 밴드의 예전 유산들에 미치지 못한다. 반드시 가사를 보면서 들어야 한다. 라브리에의 절창은 고대 그리스의 연사처럼 황제와 공주, 반란군 수장, 서술자를 오가며 분투한다. ‘대본’을 같이 봐야 그 제맛을 볼 수 있다. 문장의 호흡이 짧고 전개가 흥미로워 영어 교재로도 쓸 만하다. 어려운 단어도 별로 없어 중학생 정도면 이해가 가능하다.

청각 드라마는 종종 보물선의 뱃머리에 서 바람을 맞는 느낌을 선사한다. 이를테면 마지막 음표를 길게 끄는 라브리에의 절창이 등장인물의 결심이나 반전을 품고 악곡 전체의 조옮김과 맞물리는 순간에…. 키보디스트 조던 루디스가 만들어낸 ‘노맥’의 전자 노이즈도 인상적이다.

밴드의 전작들에 비하면 격렬한 메탈 소용돌이의 비중이 줄고 아리아풍의 부드러운 노래가 늘었다. 음반의 풍경은 고봉 많은 산맥 같다. 슈베르트의 ‘마왕’처럼 물결치는 선율에 탱고 리듬, 합창이 합류하는 ‘Lord Nafaryus’, 너페리어스의 광기를 스윙 리듬으로 그려낸 ‘Three Days’, 긴박감 넘치는 변박 리프에 올라탄 랩 같은 쏘아붙임이 데리어스 왕자와 에리스 사령관의 논쟁과 검투를 점묘한 ‘The Path that Divides’…. 성급하게 긴장이 해소되며 예측 가능한 결말로 향하는 앨범 후반부는 아쉽다.

‘Images and Words’(1992년), ‘Metropolis Pt. 2…’(1999년)와 함께 밴드의 역사를 대변할 작품이다. ‘디지털 노이즈가 문화를 대체한 세계는 어떨까’를 이야기함으로써 밴드는 스스로 혁명군이 됐다. CD 두 장, 34곡, 2시간 10분의 서사는 그 자체로 파편화된 현 음악시장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이다. 3분짜리 디지털 싱글이 군림한 제국의 변방에서 게이브리얼이 일어섰다. ♥♥♥♥♡ (10점 만점에 8.6)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the astonishing#드림시어터#메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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