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검증했다, 소리없이 강한 책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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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떠받치는 기둥 ‘스테디셀러’

“2010년 책을 낼 때만 해도 이렇게 잘 팔릴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모바일 시대지만 손글씨를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악필교정의 정석1’(사진)을 펴낸 법률저널 출판사의 이명신 출판팀장의 말이다. 사법시험, 행정고시와 같은 서술형 시험 준비생을 위해 만든 이 책은 매년 1만4000권이 팔리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 팀장은 “엉망인 글씨체를 고치려는 어른이 많고 아이의 글씨를 바로잡아주려는 부모도 적지 않다. 과거 서예학원이 했던 역할을 책이 대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안겨주는 스테디셀러는 출판사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스테디셀러 가운데 약 80%는 베스트셀러였던 ‘화려한 과거’를 지녔지만 이목을 끌지 않고 ‘소리 없이 강한’ 책도 적지 않다.

교보문고와 예스24에 따르면 2010년까지 출간된 책 가운데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000권 이상 팔린 책에는 의외의 책도 포함됐다. ‘21세기 한글 펜글씨 교본’(정진출판사) 역시 스테디셀러로 꼽혀 글씨로 고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출판사의 편집부가 저자인 책도 상당수였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은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윤동주의 ‘서시’ 등 우리나라에서 애송되는 명시 100편을 모았다. 편집부의 저력은 아동 도서에서 두드러진다. ‘똥 눌 때 보는 신문’ ‘아기 초점책’ ‘초등학생을 위한 탈무드 111가지’가 대표적이다. ‘똥 눌 때…’를 만든 삼성출판사 관계자는 “아기들이 똥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퀴즈, 이야기, 그림 등을 모아 신문 형식으로 만들었다. 마케팅을 하지 않는데도 매년 2000권 이상 판매된다”고 말했다. 시리즈가 아닌 한 권짜리 아동책의 경우 수명이 길어도 5년을 넘기기 쉽지 않지만 ‘초등학생을 위한…’은 2002년, ‘똥 눌 때…’는 2009년 각각 출간된 뒤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편집 기획력만으로도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사례로 그런 경향은 앞으로 더 짙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테디셀러 장르별로는 소설이 27.3%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데미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그리스인 조르바’ 등이 꼽혔다. 유아(14.1%)와 아동(13.6%)이 뒤를 이었고, 시·에세이와 자기계발서는 각각 7.8%였다. ‘감시와 처벌’ ‘소크라테스의 변명’ ‘초역 니체의 말’ ‘논어’처럼 읽기 만만치 않은 책에 대한 수요도 꾸준했다. 역사·과학 분야 명작인 ‘총, 균, 쇠’ ‘코스모스’ ‘이기적 유전자’도 강세를 보였다.

박정남 교보문고 상품지원단 구매팀 과장은 “독자들은 검증된 책을 찾기 때문에 스테디셀러 목록은 시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스테디셀러#악필교정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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