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죽음의 운명 알지만, 지금의 할일은 사랑 찾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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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장강명 지음/
188쪽·1만 원·문학동네

최근 한국문학의 ‘핫’한 작가 장강명 씨의 새 소설이다. 전업 작가 2년째인 그의 네 번째 문학상 수상작(문학동네작가상)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처음엔 당혹스러울 법하다. 책을 읽기 전에 제본된 부분을 잘라버려 흩어져 뒤죽박죽이 된 종이들처럼(소설 속 남자의 비유다), 이 소설의 시간들은 뒤엉켜 있다. 게다가 주인공 남자는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다닐 수 있는 능력이 있다. SF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순문학적이다. 이 이야기는 비극의 운명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운명이 닥칠 때까지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말한다.

주인공 남자는 고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 동급생을 우발적으로 죽였다. 교도소에서 나온 그 남자를 죽은 동급생의 어머니가 쫓아다닌다. 동급생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은 가해자가 아니었다며 집요하게 주변에 알리고 확증 받고 싶어 한다. 남자가 휘두른 칼에 일진이 죽은 것처럼, 남자는 종국엔 자신이 그 동급생의 어머니에게 죽임을 당할 것임을 알고 있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남자가 하는 일은 사랑을 찾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출판사로 보낸다. 고교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했던 소녀가 성인이 돼 근무하는 곳이다. 여자와의 만남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가 동급생의 어머니에게 들킬 것을 알면서도, 남자는 여자에게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별과 죽음의 미래를 알면서도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은, 실은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읽는 내내 애잔하다. 남자가 죽음을 맞는 부분은 예상된 미래가 실현되는 장면이지만 남자는 살인자인 동급생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죽음 뒤에 ‘반전’을 두었다. 또 다른 의미의 사랑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 반전에 이르기 위해 마음 아픈 독서 행위를 해나갈 만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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