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DNA 명령 따르는 고깃덩이가 생명체! 그렇다면 인간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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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배신/댄 리스킨 지음·김정은 옮김/304쪽·1만4800원·부키

동물의 피가 주식인 흡혈박쥐는 그날 자신이 빨아들여 배 속에 보관하던 피를 혈연관계는 없지만 흡혈에 허탕 친 다른 박쥐에게도 나눠준다. 그것도 딥키스를 통해서. 동물계에서 가장 이타적으로 보이는 이 행위도 사실 알고 보면 이기적 산물의 소산이다. 오늘 피로 맺은 우정 때문에 나중에 피를 빨지 못한 날은 흡혈박쥐 친구의 도움을 받을 자격을 갖는다. 만약 친구의 요구를 끈질기게 거부한다면 그 흡혈박쥐는 앞으로 먹이 나눔에 끼어들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눈앞의 이득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인 셈이다.

리처드 도킨슨의 기념비적인 저작 ‘이기적 유전자’(1976년) 이후로 인간과 자연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는 생물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코넬대 박사 출신이자 디스커버리 캐나다 채널의 일일 과학프로그램 ‘데일리 플래닛’의 공동 진행자인 저자는 한마디로 정의한다.

‘자연의 생명체들은 자신의 DNA를 복제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이기적 존재다.’

생명체는 이를 위해 자기 형제나 동족은 물론이고 배우자까지도 속이거나 죽이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심지어는 꼭 필요하다면 자기 목숨까지 바친다. 생명체에겐 목숨보다 DNA의 복제 명령이 더 중요하다.

그는 성경에서 말한 7가지 죄악 ‘탐욕 색욕 나태 탐식 질투 분노 오만’을 키워드로 생명계의 잔혹하고 이기적인 속성을 수백 건의 사례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저자는 생명체들이 DNA의 명령에 최선을 다해 따르는 고깃덩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같은 과정에서 자신의 아들에 대해 갖는 부성애도 결국 DNA 복제라는 대명제에 포함된 것이라는 회의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DNA의 명령에 따르는 고깃덩이 로봇에 불과한가? 저자는 ‘오만’이 인간을 구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동물에게 적용되는 이기적 본성이 인간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는 오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고깃덩이 로봇이 DNA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이기심에 반란을 일으킬 때 바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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