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부여 동남리사지는 백제 비구니 사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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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박물관 전면적 유물조사 통해 밝혀

불탑 없고 근처 군수리사지와 같은 기와 사용
백제 비구니사찰 첫 확인… 日 고쿠분니寺에 영향

충남 부여군 동남리사지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기와. 무늬와 제작기법을 감안했을 때 이들은 인근 군수리사지와 같이 관영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동남리사지가 백제의 비구니 사찰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충남 부여군 동남리사지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기와. 무늬와 제작기법을 감안했을 때 이들은 인근 군수리사지와 같이 관영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동남리사지가 백제의 비구니 사찰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일본 비구니 사찰의 효시가 된 백제의 절터는 과연 어디에 있나?’

학계의 오랜 숙제였던 백제 비구니 사찰에 대한 실마리 하나가 풀렸다. 충남 부여군 동남리사지(東南里寺址)에 대한 국립부여박물관의 최근 유물 조사를 통해서다. 그동안 학자들은 신라와 왜(倭)에서 확인된 여승들의 수행 공간 ‘비구니 사찰’이 백제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백제가 두 나라에 불교를 처음 전했고, 일본서기에 ‘서기 577년 백제국 왕이 돌아가는 사신 대별왕에게 부처경론 몇 권과 율사, 선사, 비구니, 주금사, 조불공, 조사공의 6명을 보냈다’는 기록이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의 비구니 사찰이 구체적으로 어디였는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비구니 사찰인 신라 영흥사나 일본 도유라데라(豊浦寺)와 달리 백제는 관련 사료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동남리사지에 대한 재조사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이곳이 비구니 사찰이며, 인근 비구 사찰인 군수리사지와 더불어 하나의 묶음 관계였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동남리사지는 이미 일제강점기인 1939년 첫 발굴이 이뤄졌으나 제대로 된 발굴보고서가 없어 이번에 당시 출토 유물에 대한 전면조사가 진행됐다.

동남리사지는 다른 사찰과 달리 불탑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귀족이 자신의 집에 세우는 사택사원이나 사신을 접대하는 영빈시설 혹은 제의용 시설일 것이라는 갖가지 추측만 난무했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1939년과 1993년에 출토된 기와 총 741점의 무늬와 제작기법을 전수 조사한 결과 국가사찰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체 기와의 약 64%를 차지하는 474점이 백제시대 관영(官營) 공방이던 ‘정암리 요지’에서 생산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정암리 요지에서 만들어진 기와가 사택 사원에 대량으로 공급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동남리사지에서 발굴된 동제 불상 파편. 형태로 보아 탄생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동남리사지에서 발굴된 동제 불상 파편. 형태로 보아 탄생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게다가 부처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인 탄생불(誕生佛)로 추정되는 동제(銅製) 불상 파편이 나왔기 때문에 이곳이 영빈 혹은 제의 시설일 가능성을 일축한다. 부여박물관은 보고서에서 “파편의 크기와 두상 형태, 왼쪽 어깨가 약간 올라간 자세 등으로 미뤄볼 때 탄생불일 가능성이 있다”며 “만약 탄생불이 맞는다면 백제 지역에서 확인된 유일한 사례일 것”이라고 밝혔다.

재밌는 것은 동남리사지에서 발굴된 기와의 96%를 차지하는 무늬가 근처 군수리사지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직선거리로 5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두 사찰이 정암리 요지에서 같은 종류의 기와를 공급받은 셈이다. 두 사찰이 뭔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병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탑이 없는 동남리사지는 금당과 목탑을 모두 갖춘 군수리사지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며 “군수리사지가 동남리사지보다 약간 먼저 지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비구 사찰인 고쿠분지(國分寺) 옆에 조성된 비구니 사찰 고쿠분니지(國分尼寺)에도 탑이 세워지지 않은 사실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승려가 지켜야 하는 계율을 규정한 사분율(四分律)에는 비구니가 탑을 세우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구일회 국립부여박물관장은 “고쿠분지-고쿠분니지의 세트관계가 군수리사지-동남리사지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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