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사제 서품식 때 함께한 가족과 이인주, 형 이범주 신부(왼쪽부터). 평화신문 제공
동기 신학생들 사이에서 ‘큰형님 신부’로 불렸던 이인주 신부. 그는 “서품식 때 기도하면 하느님이 모두 들어 주신다고 해서 5가지를 정했는데 정작 행사 때는 긴장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며 웃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20년 동안 뭐 하다 이제 왔어.”(염수정 추기경)
“….”(이인주 신부)
“어머니는 누가 모시나.”(염 추기경)
“형님 신부님요.”(이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서품식(2월 6일)을 며칠 앞두고 교구장인 염 추기경과 이인주 신부(54·서울국제선교회)의 면담이 진행됐다. 추기경은 새롭게 사제의 길을 걷게 되는 서품 예정자들과 20분 안팎의 면담 시간을 갖는다.
염 추기경이 농담을 섞어 물을 정도로 이 신부는 한참 늦게 사제가 됐다. 대부분의 신부들은 늦어도 30세 중반의 나이에 사제가 된다. 서품식 안팎에서도 이 신부를 둘러싼 화제가 이어졌다. 그는 신학교 동기생들 사이에서 ‘큰형님 신부’로 불렸다. 아버지뻘인데 형님 신부로도 부르기 어려웠다는 후문이다. 관련 자료가 없어 정확한 확인이 어렵지만 최근 10년 사이 탄생한 신부들 중 최고령일 것이라는 게 서울대교구 설명이다. 2남 3녀 중 막내인 이 신부는 이범주 신부(62·시흥성당 주임신부)와 함께 형제 신부가 됐다.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선교회 사무실에서 이 신부를 만났다.
왜 이렇게 늦었을까? 너무 늦게 신부가 된 것은 아닐까? 미소와 허허, 하는 웃음이 먼저 앞섰다. “하느님께서는 모두를 위해 사랑의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남들은 늦었다고 하지만 그 이유가 있을 것이고 전 지금이 딱 맞는 시기라고 믿습니다.”
대부분의 신부들은 신학대와 신학대학원을 거쳐 사제의 길을 걷는다. 반면 이 신부는 농업대로 진학해 그 출발점부터 달랐다.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 가톨릭교리신학원에 진학해 선교사제로 살겠다는 꿈을 세웠지만 수도원 3곳, 신학교 3곳을 거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공부하면서 호떡과 샌드위치 노점상도 했고, 때로 막노동까지 했다.
“방학 때면 마땅한 일이 없어 가끔 ‘노가다’를 뛰었습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 온갖 일을 하는 잡부였죠. 몸으로 땀 흘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과 일하면서 세상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2005년 44세 때 그는 나이 제한이 없는 서울국제선교회에 입회했고, 수원가톨릭대에서 신학과정을 다녔다. “40대 중반 나이라 받아주는 선교회가 없었는데 마침 그해 중남미 선교를 위해 서울국제선교회가 설립됐어요. 설립자인 김택구 신부님(2008년 선종)으로부터 입회 허락을 받았죠.”
2007년 파나마로 건너가 성 요셉 대신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 현지 교구에서 5년여 동안 선교사로 활동했고 부제(副祭) 품도 받았다. “국내와 달리 중남미는 신부가 없어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성당이 적지 않습니다. 본당 한 곳에 공소(公所·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지역 신자들의 모임)가 20개가 넘는 곳도 있습니다.”
큰형님 신부는 세상을 향해 ‘늦은 것은 없다’고 했다.
“오랜 시간은 허물이 적지 않은 저를 하나하나 채워주기 위한 과정 같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하느님이 저를 사랑한다는 믿음과 선교사를 향한 열망이 식지 않은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올해 하반기 파나마로 건너가 현지 선교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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