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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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고슴도치/세르게이 코즐로프, 유리 노르슈테인 글·프란체스카 야
르부소바 그림·강량원 옮김/56쪽·1만3000원·고래가숨쉬는도서관

고래가숨쉬는도서관 제공
고래가숨쉬는도서관 제공
저녁이면 고슴도치는 곰의 집을 찾아가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나란히 앉아 별을 바라봅니다. 둘의 집은 꽤 떨어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날도 고슴도치는 친구에게 가고 있었습니다. 들판을 건너고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웅덩이에 뜬 별도 보고 오래된 우물도 들여다봅니다. 오직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고슴도치는 커다란 부엉이가 뒤를 쫓고 있다는 것도 모릅니다. 그러다 한순간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얀 말을 만납니다.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지고 알 수 없는 기운에 휩싸인 고슴도치는 몹시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결국 곰을 만나게 되지요. 친구와 함께하는 그 평온한 시간은 더 소중해집니다.

유리 노르슈테인은 러시아 영화감독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몽타주 기법을 자신의 애니메이션에 적용해 아름답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든 감독입니다. 내면의 감성을 성찰하고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 그림과 음악을 조화롭게 영상화한 그의 작업은 독보적입니다. 동화 작가이며 동요 작사가이고 어린이를 위한 시나리오 작업도 하는 세르게이 코즐로프와 함께 이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노르슈테인의 영화에서 미술감독을 맡았던 프란체스카 야르부소바의 그림도 큰 몫을 했습니다. 이 책은 2000년 고지마 히로코가 일본어로 출간한 글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해 ‘안개 속에서 만난 친구’로 2002년에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2014년 ‘안개 속의 고슴도치’는 러시아 슈킨 연극대학을 졸업한 연극연출가 강량원의 번역본입니다.

러시아 문학의 힘은 아동문학에서도 발휘됩니다. 외부와 단절된 세계 속에 홀로 남겨진 존재, 평온한 일상을 침범하고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외부의 힘,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들을 성찰하게 합니다. 서정적이면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밤풍경과 매혹적인 안개가 고슴도치의 감성에 깊이를 더합니다. 영미 유럽 일본 그림책의 번역물이 대부분인 가운데 러시아 거장들이 참여한 이 그림책은 색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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