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동아일보] ONCE AGAIN~ 전설이 되어 돌아온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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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8월 28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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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nabe
1950년대 할리우드 라이징 스타 오드리 헵번과 길지 않은 필모그래피에도 오랫동안 회자되는 그레이스 켈리, 영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까지 ‘전설’이라는 말 이외에는 그들을 수식할 단어가 없다. 세대를 이어 영화와 패션으로 되살아나는 그녀들을 회고한다.
Audrey Hebburn
출생 1929년 5월 4일~1993년 1월 20일
데뷔 1948년 영화 ‘Nederlands in lessen’
대표 작품 ‘로마의 휴일’(1953),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연관 검색어 헵번 룩, 사브리나, 지방시, 살바토레 페라가모, 유니세프, 봉사
동그란 얼굴과 짙은 눈썹, 큰 키, 비쩍 마른 몸. 데뷔 초기 때만 해도 오드리 헵번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그가 출연한 연극 공연을 보고 영화 ‘로마의 휴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 전까지는. 영화 개봉 후 이전의 할리우드 여배우와는 전혀 다른 중성적이면서도 청순한 이미지가 인기를 끌면서 깜찍한 헤어스타일과 우아한 풀 스커트, 블랙 미니드레스 등 헵번 룩이 현대 패션 트렌드의 한 흐름을 만들게 된다.


Scene 1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블랙 미니드레스를 입은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 매장 앞에서 아침을 먹는 모습. 그는 심플한 디자인과 컬러, 몸에 꼭 맞는 실루엣의 옷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를 뮤즈로 삼았던 위베르 드 지방시가 디자인했다.

Scene 2
영화 ‘사브리나’ 출연을 앞두고 헵번은 지방시의 옷에 반해 파리로 찾아가는데, 지방시가 이 신인 여배우의 부탁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끈질긴 구애에 못 이긴 척 3벌의 의상을 지원했는데, 이때 선택한 세일러 칼라 스타일의 블랙 드레스는 영화 개봉 후 지방시의 주력 제품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된다. 이듬해 열린 제2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헵번은 영화 ‘로마의 휴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물론 섬세한 레이스 장식이 돋보이는 지방시의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서 말이다.

Scene 3
영화 ‘사브리나’를 통해 빛을 본 지방시의 또 다른 제품이 있다. 다리를 타이트하게 감싸는, 일명 ‘사브리나 팬츠’가 사랑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팬츠에 어울리는 ‘오드리’ 라인의 플랫 슈즈를 만들어 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Grace Kelly
출생 1929년 11월 12일~1982년 9월 14일
데뷔 1951년 영화 ‘14시간’
대표 작품 ‘하이 눈’(1952), ‘나는 결백하다’(1955)
연관 검색어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알프레드 히치콕, 드레스, 전시회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와 함께 1950년대 할리우드를 평정한 배우. 영화 ‘다이얼 M을 돌려라’ ‘나는 결백하다’ ‘창’ 등에 출연하며 단숨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뮤즈로 떠올랐다. 영화에서 여배우의 의상에 광적인 집착을 보였던 히치콕 감독은 그레이스 켈리가 패셔니스타로 발돋움하는 데 도움을 준 일등 공신이다. 영화를 통해 드러난 켈리의 클래식한 아이코닉 룩은 디자이너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5년이라는 짧은 배우 생활 동안 총 12편의 작품에 출연할 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강했으나, 26세가 되던 해 돌연 모나코 왕국 왕자와 결혼하며 할리우드를 떠났다.


Scene 1
그레이스 켈리는 우아하고 품격 있는 삶을 살길 원했다. 이런 인생관은 패션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주로 정갈한 블라우스에 하이웨이스트 풀 스커트를 매치하는 여성스런 룩으로 1950년대 미국 여성들의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지루할 수 있는 스타일에는 모자, 선글라스, 벨트, 스카프 같은 액세서리를 활용했다. 예를 들면, 셔츠 원피스에 선글라스를 끼고 파나마 해트를 삐딱하게 써 유쾌함을 자아내는 것. 이게 바로 켈리식 레이디라이크 룩의 진수다.

Scene 2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좀 더 자유로운 스타일을 오갔다. 고상한 화이트 드레스로 촬영장을 밝히기도 하고, 스윔웨어 차림으로 해변의 풍광을 즐기기도. 때론 미모의 첩보원이 돼 슈트 차림의 오피스 룩을 연출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마지막 영화가 된 ‘상류사회’에서는 충동적이지만 사랑스러운 명문가 딸을 맡아 왈가닥 이미지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스커트 대신 팬츠를 입고 셔츠 소맷단을 둘둘 접어 올린 꾸미지 않은 모습 역시 사랑스럽다.

Scene 3
그가 할리우드를 떠난 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한번은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들고 모나코 왕실을 찾아가 복귀를 설득할 정도로 애정이 남달랐다. 외로운 왕궁 생활에 지친 그에게 무척이나 달콤한 유혹이었지만 끝내 이뤄지진 않았다.

Diana Spencer
출생 1961년 7월 1일~1997년 8월 31일
특이 사항 1981년 7월~1996년 8월 영국 왕세자비
연관 검색어 웨딩드레스, 반지, 사진전, 전기, 케이트 미들턴
1980년대 전 세계 누구보다 더 화려한 삶을 살았던 다이애나. 드레스, 모자, 장신구 등 그녀가 하는 모든 것에 늘 전 세계의 관심이 모이곤 했다. 178cm의 훤칠한 키에 쇼트 헤어. 행사 일정 외에는 편안한 캐주얼과 톰보이 차림을 즐겨 왕실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자연스러운 스타일링이 다시 봐도 멋스럽다.


Scene 1
21세의 어린 나이에 찰스 황태자와 결혼한 다이애나. 세인트 폴 성당에서 거행된 결혼식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이날 초미의 관심사는 길이가 7m는 족히 넘는 압도적인 그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데이비드와 엠마누엘 부부가 함께 디자인하고, 비즈 전문가들이 한 달에 걸쳐 1만 개의 진주를 직접 수작업으로 달았다. 슬리브와 헴라인을 풍성하게 부풀려 화려함을 강조하고 허리는 가늘게 연출했다.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방 비싼 웨딩드레스 4위에 기록돼 있다.

Scene 2
화려함의 절정에 서 있었지만 소박한 스타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외출 시에는 셔츠와 스커트, 카디건이 전부였다. 큰 키 덕분인지 특별히 높은 굽의 신발을 신지 않아도 멋스럽다. 다른 나라를 공식 방문할 때는 가방과 구두, 액세서리에 힘을 줘 격식을 갖추었다.

Scene 3
파파라치에게 찍힌 한 장의 사진 때문에 국민들은 열광하고 왕실은 못마땅해했다. 그들의 왕세자비가 늘어진 케이블 니트에 편안한 면 팬츠를 입고 무릎까지 오는 허름한 가죽 부츠를 신었기 때문. 한 손을 주머니에 삐딱하게 넣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은 우아한 레이디가 아닌 중성적인 톰보이에 가깝다.

기획·안미은 우먼동아일보 에디터 | 사진·REX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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