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인들, 케이팝-한국 드라마서 못이룬 꿈 찾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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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희 교수, 헝가리-루마니아팬 42명 심층 인터뷰

한국 아이돌 그룹으로는 처음으로 틴탑이 4월 1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이날 콘서트에는 폴란드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 주변국들에서까지 팬들이 찾아와 노래와 춤을 따라하며 공연을 즐겼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제공
한국 아이돌 그룹으로는 처음으로 틴탑이 4월 1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이날 콘서트에는 폴란드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 주변국들에서까지 팬들이 찾아와 노래와 춤을 따라하며 공연을 즐겼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제공
“내가 케이팝(K-pop·한국 대중가요)을 좋아하는 이유는 완벽한 무대를 위한 노력 때문이다. 여기서는 노력하는 모습을 별로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그래봤자 미래도 없다.”

“우린 혁명 후 많은 일을 겪었지만 좋은 모델이 없었다. 한국 드라마는 국가로서 강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우리도 그런 자신감을 다시 얻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세계를 휩쓰는 한류 열풍은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장 먼 동유럽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동유럽의 한류 팬들은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를 즐길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나 서구식 자본주의로 이뤄내지 못한 이상적인 사회상을 한류 문화에서 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윤선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한국방송학보 최신호에 실린 논문 ‘신한류의 동유럽 수용과 문화 정체성 확산의 작은 정치’에서 루마니아와 헝가리 한류 팬들의 한류 콘텐츠 수용 실태를 소개했다. 그는 연구를 위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브라쇼브 크라이오바 등 4개 도시에 사는 10∼40대 남녀 한류 팬 42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이들의 한류 콘텐츠 소비 실태를 관찰했다.

동유럽 한류 팬들의 가장 큰 특징은 조직적이라는 점이다. 루마니아 한류 팬클럽의 절반은 정부에 등록된 비정부기구(NGO)다. 이들은 공식 기관 자격으로 한국 대사관이나 기업의 스폰서를 받아 팬클럽 활동을 하고, 한복 시연회나 붓글씨 대회 같은 한국문화를 알리는 행사를 개최한다. 헝가리도 대규모 댄스 파티나 한국문화 체험 행사를 마련해 한국문화를 알리는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한다. 윤 교수는 “동유럽 한류 팬들의 조직력이 높은 것은 공산주의 사회 경험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다른 지역과 달리 동유럽에서 발견되는 한류 콘텐츠의 인기 비결로 기존 사회에 대한 대안 제시 기능을 꼽았다. 그는 “동구식 사회주의에 이어 서구식 자본주의를 경험하면서 민생의 피폐와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한 이들은 전통과 예의를 중시하는 한류 콘텐츠에서 새로운 사회 대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불편해 하는 한류 드라마의 민족주의적 성향도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땅에 떨어진 이들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이는 심층 인터뷰 내용에서도 드러났다.

“헝가리 TV는 지루하고 폭력적이다. 쓰레기 같은 미국 프로만 내보내고.”

“루마니아 드라마는 값싼 이야기밖에 없다. 서구 방송을 모방하고 있다.”

“한국이 완벽한 사회는 아니겠지만 한국 가서 살고 싶다.”

윤 교수는 “동유럽 한류 팬들이 한류 콘텐츠에 열광하는 것은 콘텐츠의 질이나 문화적 취향의 문제만은 아니다”라며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고 디지털 기술을 선도하면서 근대적인 이미지를 전파하는 국가 이미지와 함께 한류 콘텐츠가 그리는 가치가 이들에게 어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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