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술을 빙자한 역사-기행-사람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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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노래/최명 지음/480쪽·1만5000원·선

저자도 인정하듯 ‘술의 노래’라는 제목과는 달리 술에 관한 얘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저자가 술을 마신 얘기가 이 책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술꾼의 시시껄렁한 잡담? 술자리에서도 남이 술 먹은 무용담은 지겨운 법 아닌가.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중국정치를 가르치고 은퇴한 노학자의 명성을 갉아먹는 책은 아닌가.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술 마신 얘기라는 표현은 겸양에 불과하고 술이란 소재를 차용해 역사, 기행, 인간, 인생을 담은 인문학 에세이라는 걸 점점 깨닫게 된다. 그가 달아놓은 수백 개의 각주만 봐도 이 책이 단순한 잡문집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각주 또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술과 함께 호방했던 70대 노학자의 글은 삼국지연의 등 중국 고전과 한시, 외국 사상 등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고 수많은 등장인물은 어떻게 이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술은 물론이거니와 읽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도는 안주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는 데다 슬쩍슬쩍 눙치는 표현에 지루할 틈이 없다.

일찍 유명을 달리한 절친한 후배의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른 뒤 대취하도록 술을 마시며 안타깝고 한스러운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야, 거기엔 무엇이든 없는 게 없겠지만 우리만 마셔서 미안하다.”

책 맨 끝에 붙인 ‘강북회 통신문’은 그의 고교 동창 모임을 위해 2008년에 쓴 글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는 역시 중국 역사를 종횡무진 누비다가 결국 김수환 추기경이 말한 ‘괜찮은 삶’으로 돌아온다.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이웃과 화목할 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알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걸 실천하는 것이 괜찮은 삶이 아닌가.’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술의 노래#역사#기행#인간#인생#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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