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뮤지컬 ‘엘리자벳’ ★★★★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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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의 고음’ 박효신에 객석 환호성… 오스트리아 ‘황후스토리’ 한순간 장악

“하하하!” 그의 목소리는 상투적인 웃음마저 어색하지 않게 만들었다. 악역 토드 역을 맡은 박효신은 뮤지컬 무대 위의 언어가 ‘노래’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킨다. EMK 제공
“하하하!” 그의 목소리는 상투적인 웃음마저 어색하지 않게 만들었다. 악역 토드 역을 맡은 박효신은 뮤지컬 무대 위의 언어가 ‘노래’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킨다. EMK 제공
오스트리아 빈은 야릇한 불협의 도시다. 화려한 바로크 취향이 금욕적 비더마이어(중산층 시민) 양식과 태연자약 뒤섞여 있다. 풍선 터지듯 삽시간에 쪼그라든 합스부르크 제국의 기억이 구겨져 얹힌 공간. 고전음악 화성의 절정을 엮어낸 모차르트와 무조(無調) 음악을 추구한 쇤베르크가 한동네 출신이라 해도 전혀 어색할 것 없는 곳이다.

빈 태생의 뮤지컬 ‘엘리자벳’은 절정부의 현란한 불협화음으로 누차 고향을 밝힌다. 달착지근한 브로드웨이 멜로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그 고백은 아슬아슬한 도전이다. 1막 초반 황제의 집무실, 2막 대공비의 방. 황실의 운명을 좌우할 음모가 잉태되는 순간마다 기이하게 비틀린 화성이 서걱서걱 고막을 긁는다.

제작사 EMK의 이보은 대리는 “지난해 2월 한국 초연 직후 ‘노래와 연주가 이상하다’는 문의가 적잖았다”고 말했다. 음악팀에선 “관객의 편안한 감상을 위해 불협화음 부분을 평이하게 수정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씨는 “부조리로 삐걱거리는 황실의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며 타협하지 않았다.

26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다시 막을 올린 ‘엘리자벳’은 불협화음에 대한 지난해의 염려를 말끔히 잊게 했다. 오케스트라는 머리카락 한 올만 한 실수라도 내보이지 않겠다고 작심한 듯 집중도 높은 연주를 들려줬다. 그러나 모든 자잘한 불안을 확 털어낸 주인공은 올해 새로 합류한 ‘토드(Tod·죽음)’ 역의 박효신이었다.

1막 중반 엘리자벳 황후(옥주현)와 프란츠 요제프 황제(민영기)의 결혼식에 나타나 토드가 부르는 노래 ‘마지막 춤’. 박효신은 원래 ‘시 플랫’인 절정부 애드리브 고음을 ‘미 플랫’까지 높여 부른다. 태연한 표정으로 두개골을 열어 속을 꺼내놓는 듯한 발성에 객석은 온통 자지러지는 환성으로 가득 찼다. 불협화음 처리는 여유로운 유희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 군 복무를 마친 박효신은 앨범 작업을 뒤로한 채 이 작품을 준비했다. 뮤지컬 출연은 데뷔 1년차 때 ‘락 햄릿’ 이후 13년 만이다. 한국 대중음악 판을 온통 ‘소몰이’로 채워놓고 대중의 시선 밖으로 숨어버렸던 흉성(胸聲)의 선구자. 지난해 말 복귀 콘서트에서 넉살 좋게 군가 편곡 메들리를 선보인 그는 이제 내성적인 소몰이 소년이 아니었다. ‘뮤지컬 무대에는 어울리지 않을 목소리’라는 기우를 비웃듯 십여 명의 목소리를 휘둘러 감싸며 극 전반의 사운드를 증폭시킨다. 450m²의 무대가 시종 좁게 느껴졌다.

연기에선 미미한 실책이 몇 차례 눈에 띄었다. 1막 초반 찻주전자를 들고 나오던 암살자 루케니가 발을 헛디뎌 무대 바닥에 그릇을 쏟았고, 2막 후반 ‘죽음의 춤’ 장면에선 천사들이 주고받던 권총이 무대 밖으로 밀려 사라졌다. 배우들의 유연한 대처는 ‘실책보다 실책 뒤 후속동작이 승부를 가른다’는 야구경기의 금언을 떠올리게 했다. 주자는 내줘도 실점은 하지 않을 만한 연습량이 엿보였다.

이야기 짜임새는 아쉽다.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고 도입부에서 일갈하지만 정작 주요 갈등은 연인들이 아닌 고부(姑婦)간에 빚어진다. 1부에서 고조됐던 기대감을 2부에서 이어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느닷없이 막을 내리는 듯했다. 박효신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위태롭게 여겨졌을 허점이다.

: : i : :

로버트 요한슨 연출, 김소현 김준수 전동석 이지훈 박은태 윤영석 출연. 9월 7일까지. 3만∼14만 원. 02-6391-6333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엘리자벳#박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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