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 끼고 드라마]2001 ‘웨스트윙’ 2012 ‘뉴스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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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거인, 미국의 초상화

드라마 ‘뉴스룸’의 주인공 윌 매커보이(제프 대니얼스)는 초반에 자신이 망가진 것도 모른 채 잘난 척하는 뉴스 앵커로 나온다. 테러와의 전쟁, 금융위기를 겪으며 위상에 금이 간 미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HBO 홈페이지
드라마 ‘뉴스룸’의 주인공 윌 매커보이(제프 대니얼스)는 초반에 자신이 망가진 것도 모른 채 잘난 척하는 뉴스 앵커로 나온다. 테러와의 전쟁, 금융위기를 겪으며 위상에 금이 간 미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HBO 홈페이지
장면 1

전국에서 선발된 고등학생들이 백악관을 견학하고 있는 동안, 테러 용의자가 백악관 직원으로 근무한다는 첩보가 입수된다. 건물은 폐쇄되고 학생들은 구내식당에 갇힌 신세가 된다. 한 학생이 견학생들을 안내하던 정무보좌관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모두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건가요?”

장면 2

한 대학 강연장. 강연자로 나선 뉴스 앵커 윌 매커보이는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기로 유명한 인물. 강연 사회자는 집요하게 윌의 개인적 정치 성향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캐묻고, 윌은 폭발 직전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여학생이 윌에게 질문을 던진다.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장면 1은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웨스트윙’ 시즌 3의 특별편에 나온다. 2001년 9·11테러 직후 방영된 시즌으로 여기서 말하는 ‘모두’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다. 백악관 보좌진과 학생들은 이 질문을 놓고 긴 토론을 벌이지만 결론은 교훈적이다. 드라마는 ‘끝판왕’ 대통령 제드 바틀렛을 등장시켜 “탄압과 전쟁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다원주의라는 우리(미국)의 가치를 지켜 나가면 마침내 승리할 것이다”라는 우아한 답을 내놓는다.

장면 2는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뉴스룸’ 첫 회에 나온다. 하지만 윌이 내놓은 답에 웨스트윙의 우아함은 없다. 윌은 짜증을 폭발시키며 답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가 아닙니다.”

재미있는 것은 10년의 시차를 둔 두 드라마가 한 사람, 바로 유명 작가이자 제작자인 에런 소킨의 손끝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점이다. 엄청난 사건을 겪고도 승리를 확신하던 2001년의 미국이 2012년엔 결국 패배를 자인한 셈이다. 상처만 남은 테러와의 전쟁과 금융위기를 겪고 초라해진 미국의 위상이 그대로 담겼다.

두 주인공도 이런 추락을 그대로 보여준다. 웨스트윙의 대통령 제드 바틀렛은 말 그대로 완벽한 인물이다. 노벨상을 탄 뛰어난 학자이고, 늘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심지어 좋은 아빠, 남편이기까지 하다. 반면 뉴스룸의 앵커 윌은 결점투성이다. 재능은 있지만 시청률 때문에 쓰레기 같은 가십 보도도 불사하고, 바람둥이에 대마초를 피운 채 뉴스를 진행할 정도의 사고뭉치다.

뉴스룸은 이렇게 망가진 윌이 진정한 뉴스의 가치를 깨달으며 갱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윌의 프로그램은 특히 선거 때마다 튀어나오는 극단적인 공화당 강경파의 허점을 파고들어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근본주의를 배격하고 ‘다양성과 자유’라는 미국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던 웨스트윙의 교훈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뉴스룸의 마지막 회에선 첫 회에 나왔던 여학생을 윌의 프로그램 인턴으로 재등장시킨다. 여학생을 본 윌은 “미국을 가장 위대한 국가로 만드는 건 바로 너 같은 사람들이다”라고 고쳐 말한다. 도덕적 개인에게 사회를 변혁할 힘을 기대하며 10년 전 교훈을 반복하는 이 드라마가 과연 21세기의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뉴스룸 시즌 2는 다음 달 방영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웨스트윙#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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