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료한 지성, 풍성한 의미, 충만한 실험정신… 두 프랑스 미술전

  • 동아일보

소피 칼 국내 첫 개인전 ‘글-이미지가 퍼포먼스와 만났을때’
프랑스 젊은 작가전 ‘유령의 집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베르크’ ‘루르드’ ‘No where’ 3부작으로 완결된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앞에 선 프랑스 미술작가 소피 칼. 그는 텍스트와 이미지,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독창적 작업으로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베르크’ ‘루르드’ ‘No where’ 3부작으로 완결된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앞에 선 프랑스 미술작가 소피 칼. 그는 텍스트와 이미지,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독창적 작업으로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파리에서 베네치아까지 낯선 남자를 따라가며 사진을 찍었다(1979년). 다른 사람에게 자기 침대에서 잠을 자라고 권유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1980년). 어머니에게 사립탐정을 고용하도록 부탁해 자신을 미행하게 만들었다(1981년).

보통 사람 같으면 제정신 아닌 걸로 취급받기 십상이겠으나 프랑스 작가 소피 칼(60)은 이렇듯 사적인 세계와 예술 퍼포먼스를 뭉뚱그린 작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가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에서 선보인 작품도 화제였다. 애인이 헤어지자며 보내온 e메일을 외교관, 헤드헌터, 범죄학자까지 여성 107명에게 보여주고 그들이 각자 편지를 해석한 텍스트에 자신이 촬영한 여성들의 사진을 곁들인 ‘잘 지내기를 바라요’란 작품이다.

자기 삶의 조각들을 소재로 삼아 독특한 허구의 집을 짓는 소피 칼. 개념미술가 소설가 사진작가 영화감독을 종횡무진 오가는 그가 국내 첫 개인전을 열고 있다. 서울 신사동 313아트프로젝트에서 4월 20일까지 열리는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전. ‘잘 지내기를…’ 연작 중 7점, 미래를 점쳐주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여행을 떠나 그 여정을 글 사진 영상으로 기록한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3부작을 처음 공개했다. 02-3446-3137

이 전시와 함께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의 ‘The French Haunted House-프랑스 젊은 작가’전도 프랑스 미술을 이해하는 통로를 열어준다. 국가별로 신진 작가를 조명하는 연례전시로 지난해 스위스에 이어 프랑스전을 마련했다(6월 8일까지). 1970, 80년대생 작가 12명의 41점을 선보였다. 02-3448-0100

○ 사적인 삶과 보편성 사이에서

소피 칼의 작업은 자전적 픽션의 형태로 이뤄진다. 전시를 위해 처음 내한한 작가는 “작품에서 내 삶을 공개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기 삶의 사건을 소재로 삼지만 누구나 한 번쯤 이별 편지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현대인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문제로 재구성한 작업이란 얘기다.

전시에선 그가 1970년대 이후 글과 이미지, 퍼포먼스를 포괄하는 종합적 능력으로 주목받은 이유를 깨닫게 한다. 상실과 기억에 대한 예민한 감성, 섬세한 언어 감각이 스며든 작품은 외관상 시적 감성만 충만해 보이지만 작품 기획과 제작 단계마다 냉철한 이성이 깔려 있다. 자신이 규칙을 고안하고 다시 그 규칙대로 따른다는 점에서 논리적 접근과 시각언어의 서정적 표현 방법을 결합한 새로운 개념미술을 개척했다. ‘인생을 내가 통제한다’는 주체의식과 우연에 의해 삶이 좌우된다는 임의성을 아우른 작품의 양면성이 매력적이다.

○ 전통과 실험정신의 교차점에서

프랑스 신진작가들을 조명한 전시에 나온 테오 메르시에의 ‘투명가족’.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프랑스 신진작가들을 조명한 전시에 나온 테오 메르시에의 ‘투명가족’.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프랑스 젊은 작가전의 경우 독립 큐레이터 가엘 샤르보가 ‘유령의 집’이란 주제로 3개 층 공간을 사진 조각 영상 설치작품으로 엮어냈다. 작가 이름은 낯설어도 작품은 탄탄하다. 전통에 대한 이해와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그 위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가족을 조각으로 표현한 테오 메르시에, 1회용 휴지상자에서 뽑혀 나온 티슈를 거대한 기념비적 형상으로 연계한 쥘리 베나의 사진, 변종 동물박제를 만든 쥘리앵 살로, 우울한 정서가 스민 다미앵 카디오의 소품 회화가 돋보인다. 한국계 작가 플로랑스 뤼카의 드로잉, 알제리 출신 네일 벨루파의 설치작품 등 다문화적 배경도 눈길을 끈다. 현대미술의 새 출구를 연 마르셀 뒤샹을 배출한 나라답게 명료한 지성과 풍성한 의미를 엿보게 한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소피 칼#유령의 집#테오 메르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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