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당신… 소주 한 잔, 막춤에 시름을 털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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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안은미의 ‘아저씨들을 위한 무책임한 땐스’ ★★★☆

쏟아지는 물속에서 마음껏 춤을 추는 ‘아저씨’들. 사진작가 최영모 씨 제공
쏟아지는 물속에서 마음껏 춤을 추는 ‘아저씨’들. 사진작가 최영모 씨 제공
흰색 막걸리통 4000개가 무대 정면 벽을 가득 채웠다. 색색의 양복을 차려입은 무용수들은 천장에서 비 오듯 물이 쏟아지는 가운데 격렬하게 뛰고 구르고 미끄러졌다. 힘겹게 달려가야 하는 이 시대의 아저씨들이 겹쳐 보였다.

안무가 안은미는 2011년 할머니들의 몸짓으로 꾸민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지난해 10대 청소년들의 춤을 담은 ‘사심 없는 땐스’에 이어 올해는 아저씨들을 무대로 불러 올렸다. 1∼3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가 펼쳐졌다. 안은미의 ‘몸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녹색 소주병을 들고 등장한 안은미는 소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가 분수처럼 뿜어냈다. 그는 관객들에게 소주 한잔을 권하며 같은 동작을 하도록 유도했다. 객석 곳곳에서 소주 분수가 분출했고 모두 박장대소했다.

이어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숨 가쁘게 달려가며 춤추는 중에 무대에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물은 아저씨들의 땀과 눈물, 또는 쓰게 삼키는 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6개월간 등산로와 뒷골목, 들녘 등 전국 곳곳에서 촬영한 아저씨들의 춤 영상이 등장한다. 아무런 소리 없이 화면에 비치는 아저씨들의 막춤은 웃기기도, 왠지 쓸쓸하기도 했다.

영상이 끝난 뒤 무용수가 아닌, 실제 아저씨 22명이 무대로 나와 춤을 춘다. 배경음악은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같은 뽕짝이다. 막춤 말고는 춤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기만 한 아저씨들의 몸짓은 절규이고 탈출이고 해방이었다.

소주와 트로트, 아저씨, 막춤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조합이었고 초반에 전문 무용수들이 선보인 안무 외에는 영상에서나 실제 무대에서의 춤은 엇비슷했다. 무대에 선 아저씨들 간에는 뜨거운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것 같았지만 그 열기가 객석까지 다다르진 못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아저씨들을 위한 무책임한 땐스#안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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