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잃어버린 내 악보를 찾아다오” 연주자에게 나타난 슈만의 유령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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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부인 클라라의 초상. 동아일보DB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부인 클라라의 초상. 동아일보DB
‘스토리’가 중요한 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꽤 재미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명곡의 뒷얘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가 그렇습니다.

‘미쳐서 죽은 작곡가의 유작’ ‘후세 음악가들에게 나타난 작곡가의 유령’ ‘한 세기나 늦게 발견돼 세상에 나온 작품’…. 이미 수많은 흥미 요소를 갖춘 셈이죠. 그런데도 슈만에게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슈만은 43세 때인 1853년 이 곡을 작곡해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요하임 아닙니다)에게 초연을 의뢰하며 악보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초 그는 정신착란으로 강물에 뛰어들고,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해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악보를 훑어본 요아힘은 구성이 완벽하지 않다는 인상을 갖게 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쓴 작품이로군. 발표하면 오히려 슈만의 명예에 누가 되겠다”라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는 베를린의 프러시아 국립도서관에 악보를 넘겨주고 이에 대해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음원제공 낙소스>
<음원제공 낙소스>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80년이 지난 1933년 3월의 일이었습니다. 요아힘의 조카손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옐리 다라니와 아딜라 파치리 자매가 런던에서 열린 교령회(交靈會)에 참석했다가 “슈만의 유령이 찾아왔어요. 잊혀진 바이올린 협주곡을 찾아달라네요.” “요아힘 할아버지가 그 악보는 프러시아 국립도서관에 있다고 했어요”라고 ‘헛소리’를 해댄 것입니다. 교령회란 당대에 유행했던 풍속으로 우리의 ‘굿’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진짜 슈만의 유령이 나타났는지 선뜻 납득하긴 힘들군요. TV 프로그램에 ‘논리로 풀어 달라’고 의뢰하고 싶습니다).

놀랍게도 악보는 실제 프러시아 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조카손녀들이 어릴 때 요아힘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얘기를 무의식 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떠올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입증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작품은 1937년 11월 26일 게오르크 쿨렌캄프의 독주로 초연됐습니다.

음악 사상 가장 아름답고도 떠들썩한 사랑 끝에 결혼에 성공했던 슈만과 클라라. 그렇지만 슈만은 클라라와 아홉이나 되는 자녀를 남기고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이후 클라라는 40년이나 더 외롭게 살아갔습니다.

오늘은 그 클라라가 남긴 피아노3중주의 느린 악장을 듣고 싶군요. 남편이 떠난 이듬해 작곡한 작품입니다. 그 서글픈 악상이 가슴을 저릿하게 합니다. 내일이면 다시 3월. 옐리와 아딜라 자매가 슈만의 잊혀진 작품에 대해 증언한 바로 그때로부터 80년이 흘렀습니다. http://classicgam.egloos.com/188736

유윤종 gustav@donga.com
#슈만#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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