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이 울고 갈 대서사 판타지 문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3일 03시 00분


16세기 英시인 스펜서의 ‘선녀여왕’ 첫 완역 임성균 교수

임성균 숙명여대 교수는 ‘선녀여왕’을 20여년에 걸쳐 완역함으로써 국내에 처음으로 에
드먼드 스펜서의 작품을 소개했다. 임 교수는 앞으로 스펜서를 영국 문단에 알린 작품
‘양치기 달력’을 번역할 계획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임성균 숙명여대 교수는 ‘선녀여왕’을 20여년에 걸쳐 완역함으로써 국내에 처음으로 에 드먼드 스펜서의 작품을 소개했다. 임 교수는 앞으로 스펜서를 영국 문단에 알린 작품 ‘양치기 달력’을 번역할 계획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선녀여왕’은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를 능가하는 대서사이자 무지하게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조만간 외국에서 ‘선녀여왕’을 각색한 판타지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요.”

16세기 영국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의 대표작이자 영시 사상 가장 긴 작품인 ‘선녀여왕(The Faerie Queene)’이 국내 처음으로 완역됐다. 스펜서는 ‘영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초서를 계승하고, ‘실낙원’을 쓴 존 밀턴 등 르네상스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쳐 ‘시인들의 시인’으로 꼽힌다. ‘선녀여왕’은 엘리자베스 1세를 상징하는 선녀여왕을 섬기는 기사들의 모험담. 성스러움 절제 정결 우정 정의 예절 변화의 덕목을 각각 이야기하는 총 7권으로 구성돼 당대의 정치 종교 사회적 이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스펜서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이 작품을 헌정했다.

영문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지만 이제야 ‘선녀여왕’의 번역이 끝난 것은 분량이 방대한 데다 16세기 영어의 문법 구조와 철자가 지금과 많이 달라 영어권 독자들이 읽기에도 난해하기 때문이다. 2007년 나남에서 1, 2권이 출간된 데 이어 최근 아카넷에서 3∼7권이 마저 출간됐다.

번역과 해제를 맡은 임성균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59)는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박사 과정에 있던 시절, 이 재미난 작품이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전공자의 사명감으로 번역을 시작했는데 (20여 년 만인) 이제야 끝났다”고 말했다.

‘선녀여왕’은 1∼7권이 각각 일종의 장(章)이라 할 수 있는 12개의 칸토로 구성되고, 각 칸토는 35∼77개의 연(stanza), 각 연은 9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 3853개의 연에 ‘스펜서리언 스탄자’라고 불리는 독창적인 운율 체계를 유지하면서 3개의 각운만으로 쓰인 작품이다.

임 교수는 “정형시의 구성을 유지한 채 웅장하고 환상적인 서사를 창조했다는 사실에 번역 내내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려운 옛 영어로 쓰였고 운문이라는 점에서 대중 독자의 접근이 쉽진 않다. “문헌학자 J R R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과 ‘호빗’ 원작에도 고대 영어가 많이 나와 읽기 어려워요. 원작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각색해 인기 영화가 탄생한 거죠. ‘선녀여왕’에도 철인(iron man), 거인, 괴물 등 다양한 인물이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현대식 산문 책과 어린이 그림책으로 각색돼 출간됐죠.”

제목이 ‘선녀여왕’이지만 정작 선녀여왕은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 속 기사들이 선녀여왕에게 소속돼 여왕을 예찬할 뿐이다. “3권부터 등장하는 브리토마트는 정결의 여기사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엘리자베스 1세가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은 처녀여왕이었다는 거죠. 작품 속 브리토마트가 결국 정의의 기사 아테걸과 사랑을 이룬다는 설정으로 볼 때 브리토마트는 스펜서가 가장 공들여 창조한 인물로 보입니다.”

‘선녀여왕’은 발표된 지 400년이 넘었지만 늙지 않은 텍스트다. “스펜서는 젊은이들에게 설교가 통하지 않으니 재미난 이야기를 통해 교육하려고 이 작품을 썼습니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지만 인문학은 어느 시대에나 통합니다. 현대에 플라톤을 능가하는 철학자, 셰익스피어를 능가하는 극작가, 스펜서를 능가하는 영시인을 찾기 어렵지 않습니까.”

‘선녀여왕’ 3권 ‘브리토마트, 또는 정결의 전설’의 서시 중에서

에드먼드 스펜서
에드먼드 스펜서
여기서 나는 정결에 대하여 쓰게 되었으니,
다른 어떤 것보다 드높은 고귀한 덕목이다.
이를 표현하려고 내가 이국의 요정에게서
본보기를 가져올 필요가 무엇이 있으리오?
이는 내 주군(엘리자베스 1세)의 가슴에 고이 모셔져 있으며,
그분의 각 지체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기에.
정결을 지킨다고 공언한 숙녀들 모두는 다만
그분의 마음을 그린 그림을 보면 될 것이다,
현존하는 그 어떤 기교로 그것을 그려낼 수만 있다면.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선녀여왕#임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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