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라지다’에서 늙은 트랜스젠더 말복(왼쪽)으로 파격 변신해 배우의 변신 역시 무죄임을 유감없이 보여준 박용수 씨. 대기만성형 배우인 그는 “타고난 딱딱함을 버리고 유연한 배우가 되기 위해 숱한 불면의 밤을 보냈다”며 “엄숙하기만 했던 내 안의 장난기 어린 아기를 발견해 가는 요즘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남산예술센터 제공·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제가 배우로서 정말 딱딱한 사람이었어요. 88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제 연극 단 한 편도 안 보신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를 무릅쓰고 연기를 해 왔지만 그 벽을 못 넘어 오랜 세월 힘들었습니다. 고향이 부산이라 경상도 사투리 고치느라 힘들었고, 경상도 사내의 완고함을 깨느라 힘들었고, 있어 보이는 제 이미지 깨느라 힘들었습니다.”
박용수(57)는 이름보다 얼굴이 더 유명한 배우였다. 서울대 성악과(바리톤) 출신이란 좋은 학력에 중후하고 훤칠한 외모를 지닌 그는 자신의 말처럼 연극판뿐만 아니라 영화나 TV에서도 “돈 있고, 배운 거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을 연기했다. 그러다 2011년 연극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에 출연해 무뚝뚝하고 고집 센 경상도 아버지 역을 맡으며 “고목나무에 연기 꽃이 피었다”라는 평을 받기 시작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써도 되는 역은 평생 처음이었습니다. 늘 표준어 쓰는 군인 장관 교수 이런 역만 했거든요.”
‘복사꽃…’은 그에게 상복을 안겨 줬다. 그해 서울연극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동아연극상 연기상까지 연달아 수상했다. 그는 작년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15년 전에 이 상을 받는 후배를 축하하러 가는 굴다리 위에서 그때쯤 나도 받았으면 했는데 이제야 받게 됐다”라는 감개무량한 수상 소감으로 화제가 됐다. 그 후 지난 1년간 그는 연극배우로서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냈다.
“한 해 다섯 편의 연극을 했어요. 전에는 많아야 두 세 편이었는데….”
세밑에 막을 올린 다섯 번째 연극 ‘사라지다’(이해성 작·연출)에서 그는 극적인 변신을 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 말복 역을 맡아 몸에 착 달라붙는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고 짙은 화장, 여성스러운 말투와 몸짓으로 객석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복사꽃…’이 그에게 딱 맞는 선물이었다면 ‘사라지다’는 그 변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었다.
“처음에 제안을 받고는 손사래 쳤어요. 연기 변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관객의 거부감 때문이었습니다. 제 머리통이 연극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큰데 여장을 하면 얼마나 기겁하실까 해서…. 그런데 해성이가 ‘트랜스젠더라고 다 하리수처럼 예쁘고 날씬한 게 아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라면서 설득하더라고요.”
연극은 교통사고로 숨진 동창생 윤주(황은후)의 1주기에 모인 삼십대 중반 네 여성의 감춰진 사연과 윤주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윤주의 이모(생물학적 삼촌)인 말복은 주책 맞고 배운 거 없지만 다섯 동창생의 아픈 비밀을 하나씩 벗겨 내는 존재다.
연극에서 제일 빛나는 장면도 말복이 성전환하기 전 결혼하고 함께 딸까지 낳은 여자(강애심)와 20여 년 만에 대면할 때이다. 말복은 자신의 상태를 ‘병’으로 생각하고 결혼과 아기로 ‘치유’하려 했던 자신의 과오를 용서받고자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버림받은 두 여인에게도 치유받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말복은 그렇게 어긋난 운명의 희생자이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또다시 타인에게 고통과 아픔을 안겨 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슬픈 인생을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광대의 표정으로 그려 낸다.
“말복이가 자신의 영혼을 찾아 나선 나이가 제가 연기에 눈뜬 나이랑 비슷할 겁니다. 저도 삼십대 후반까지 연기가 제대로 안 돼 너무 힘들어 자살할 생각까지 여러 번 했거든요. 나이 마흔을 넘어서야 제가 맡은 배역 속으로 한 번은 들어갔다 나와야 제대로 된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이 박용수가 얼마나 자유롭고 유연한 배우가 됐는지 많은 분에게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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