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꼰대’ 전문에서 트랜스젠더 대변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3일 03시 00분


연극 ‘사라지다’ 주역 박용수씨 고목나무 꽃피듯 연기혼 불살라

연극 ‘사라지다’에서 늙은 트랜스젠더 말복(왼쪽)으로 파격 변신해 배우의 변신 역시 무죄임을 유감없이 보여준 박용수 씨. 대기만성형 배우인 그는 “타고난 딱딱함을 버리고 유연한 배우가 되기 위해 숱한 불면의 밤을 보냈다”며 “엄숙하기만 했던 내 안의 장난기 어린 아기를 발견해 가는 요즘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남산예술센터 제공·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연극 ‘사라지다’에서 늙은 트랜스젠더 말복(왼쪽)으로 파격 변신해 배우의 변신 역시 무죄임을 유감없이 보여준 박용수 씨. 대기만성형 배우인 그는 “타고난 딱딱함을 버리고 유연한 배우가 되기 위해 숱한 불면의 밤을 보냈다”며 “엄숙하기만 했던 내 안의 장난기 어린 아기를 발견해 가는 요즘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남산예술센터 제공·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제가 배우로서 정말 딱딱한 사람이었어요. 88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제 연극 단 한 편도 안 보신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를 무릅쓰고 연기를 해 왔지만 그 벽을 못 넘어 오랜 세월 힘들었습니다. 고향이 부산이라 경상도 사투리 고치느라 힘들었고, 경상도 사내의 완고함을 깨느라 힘들었고, 있어 보이는 제 이미지 깨느라 힘들었습니다.”

박용수(57)는 이름보다 얼굴이 더 유명한 배우였다. 서울대 성악과(바리톤) 출신이란 좋은 학력에 중후하고 훤칠한 외모를 지닌 그는 자신의 말처럼 연극판뿐만 아니라 영화나 TV에서도 “돈 있고, 배운 거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을 연기했다. 그러다 2011년 연극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에 출연해 무뚝뚝하고 고집 센 경상도 아버지 역을 맡으며 “고목나무에 연기 꽃이 피었다”라는 평을 받기 시작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써도 되는 역은 평생 처음이었습니다. 늘 표준어 쓰는 군인 장관 교수 이런 역만 했거든요.”

‘복사꽃…’은 그에게 상복을 안겨 줬다. 그해 서울연극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동아연극상 연기상까지 연달아 수상했다. 그는 작년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15년 전에 이 상을 받는 후배를 축하하러 가는 굴다리 위에서 그때쯤 나도 받았으면 했는데 이제야 받게 됐다”라는 감개무량한 수상 소감으로 화제가 됐다. 그 후 지난 1년간 그는 연극배우로서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냈다.

“한 해 다섯 편의 연극을 했어요. 전에는 많아야 두 세 편이었는데….”

세밑에 막을 올린 다섯 번째 연극 ‘사라지다’(이해성 작·연출)에서 그는 극적인 변신을 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 말복 역을 맡아 몸에 착 달라붙는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고 짙은 화장, 여성스러운 말투와 몸짓으로 객석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복사꽃…’이 그에게 딱 맞는 선물이었다면 ‘사라지다’는 그 변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었다.

“처음에 제안을 받고는 손사래 쳤어요. 연기 변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관객의 거부감 때문이었습니다. 제 머리통이 연극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큰데 여장을 하면 얼마나 기겁하실까 해서…. 그런데 해성이가 ‘트랜스젠더라고 다 하리수처럼 예쁘고 날씬한 게 아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라면서 설득하더라고요.”

연극은 교통사고로 숨진 동창생 윤주(황은후)의 1주기에 모인 삼십대 중반 네 여성의 감춰진 사연과 윤주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윤주의 이모(생물학적 삼촌)인 말복은 주책 맞고 배운 거 없지만 다섯 동창생의 아픈 비밀을 하나씩 벗겨 내는 존재다.

연극에서 제일 빛나는 장면도 말복이 성전환하기 전 결혼하고 함께 딸까지 낳은 여자(강애심)와 20여 년 만에 대면할 때이다. 말복은 자신의 상태를 ‘병’으로 생각하고 결혼과 아기로 ‘치유’하려 했던 자신의 과오를 용서받고자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버림받은 두 여인에게도 치유받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말복은 그렇게 어긋난 운명의 희생자이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또다시 타인에게 고통과 아픔을 안겨 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슬픈 인생을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광대의 표정으로 그려 낸다.

“말복이가 자신의 영혼을 찾아 나선 나이가 제가 연기에 눈뜬 나이랑 비슷할 겁니다. 저도 삼십대 후반까지 연기가 제대로 안 돼 너무 힘들어 자살할 생각까지 여러 번 했거든요. 나이 마흔을 넘어서야 제가 맡은 배역 속으로 한 번은 들어갔다 나와야 제대로 된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이 박용수가 얼마나 자유롭고 유연한 배우가 됐는지 많은 분에게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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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2만5000원. 02-758-215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박용수#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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