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대한민국, 왜 열풍국가가 되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부동산 주식 재테크 조기유학 영어 응원 열풍
유별난 평등주의, 부자되고픈 선망과 맞물려 집단적 쏠림현상
◇열풍의 한국 사회/구난희 외 5명 지음/262쪽·1만6000원·이학사

외국에서 장기간 체류해본 한국인이라면 그동안 살아온 한국 사회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유별난 곳이었는지를 먼발치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뭔가 유행했다 하면 너도 나도 그 대열로 몰려 온 나라가 들썩인다. 부동산 투기 열풍, 주식 열풍, 조기유학 열풍, 이민 열풍, 로또 열풍, 성형 열풍….

한국인에겐 너무나 익숙해 새로울 것도 없는 ‘열풍’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집이 나왔다. 사회과학자 6명이 각각 대박 열풍, 부자 열풍, 맛집 열풍, 영어 열풍, 신명문고(외고) 열풍, 스포츠 열풍을 소재로 열풍의 사회구조적 원인을 찾고 현상을 분석했다. 머리말에서 저자들은 “열풍은 특정 시대의 정치경제적 또는 사회문화적 상황에 대한 사회 성원들의 집합적인 압축적 반응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열풍은 잠깐 휘몰아쳤다가 사라지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사회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사회적 변혁의 기제가 된다. 열풍에 깔린 원인과 그 파급력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이유다.

돈을 더 많이 갖고 싶은 마음이야 인간의 본능이지만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부자 되기 열풍’이 불어 닥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대학 캠퍼스에는 저항 담론을 대체하는 ‘부자학 개론’ 강의와 ‘부자 동아리’가 생겨났고,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재테크 서적이 인기를 끌었으며,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경제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2002년 유행어가 된 한 신용카드회사의 광고 문구 ‘여러분, 부자 되세요!’는 소수의 특권층뿐 아니라 평범한 ‘여러분’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끌어냈다.

정수남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후연구원은 “금융컨설턴트나 펀드매니저와 같은 전문가들의 확신에 찬 정보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평등주의적 의식의 결합은 부자 되기에 대한 보편적 선망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부자 되기 열풍은 외환위기 이후 미래의 불투명성에서 비롯되는 ‘공포’, 국가와 시장이라는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환멸’, 그리고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선망’이 결합된 결과다. 신자유주의는 공포, 환멸, 선망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냄으로써 개인을 감정적으로 통치해왔다.

‘대박 열풍’도 ‘부자 되기 열풍’과 비슷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대박’이라는 용어는 투자에 비해, 단기간에, 많은 부를 획득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많은 국민이 이런 용어를 일상적으로 쓰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박은 보통 노력의 대가라기보다는 투기나 운, 또는 불법적 행위를 통해 얻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저돌적인 산업화를 경험한 한국 사회는 유독 사회적 상향 이동에 대한 열망이 높다. 또 한국인은 매우 높은 평등주의 의식을 갖고 있는데, 형편이 자신보다 나은 타자와 비교함으로써 늘 분배가 불공정하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 이 좌절감을 한번에 벗어나려는 마음이 대박의 꿈으로 쉽게 전환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노동의 대가보다는 로또, 펀드, 부동산투기, 개발이익 등을 통해 부를 획득하려는 투기적 수혜자들의 ‘무임승차’ 행위가 하나의 열기로 표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영어 열풍은 미국 중심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문화제국주의적 요소’와 영어가 곧 계급 재생산의 기제로 기능하는 ‘문화자본주의적 요소’가 중첩되는 지점에서 그 폭발적 위세를 드러낸다는 해석도 흥미롭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열풍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들여다보았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단지 논문들을 모아놓기만 한 점은 아쉽다. 각각의 열풍 현상을 아우르는 한국 사회의 ‘열풍론’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다른 사회와의 비교연구까지 했더라면 훨씬 흥미로운 결과를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열풍, 즉 집단적인 쏠림 현상은 어떤 목표를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는 평등주의가 강력하게 작용한 결과다. 이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책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삼성경제연구소)을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채널A 영상] ‘국민 앱’ 김기사-애니팡 1000만 돌파, 인기 비결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