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5>낙엽 밟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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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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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잎 떨어지는 소리에 가을이 오고 낙엽이 뒹구는 소리에 가을이 갑니다. 호젓한 암자 하나 바위를 등지고 서 있습니다. 그곳으로 고불고불 오솔길 하나 나 있습니다. 산속이라 벌써 찬바람이 매서워 오구나무 잎이 바삐 붉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인이라면 가는 가을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좋은 시를 짓고자 찾아온 것이겠지요.

서울대가 있는 관악산 기슭 자하동(紫霞洞)에 살았고 그 붉은 노을을 사랑하여 자하(紫霞)라는 아름다운 호를 사용한 신위(申緯·1769∼1845)의 작품입니다. 그는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능하여 삼절(三絶)로 일컬어졌습니다. 낙엽을 무척 좋아하여 여러 편의 시를 지었는데 이 시는 그중 한 편입니다.

개울가 맑은 물 위에 떠 있는 붉은 단풍잎, 불을 지펴 차를 끓이고 온기를 돋워주는 낙엽, 영롱하게 물들어 시인의 창가에서 날리는 단풍잎, 황금빛 국화와 어우러져 은자의 눈을 즐겁게 하는 단풍잎 등 10편의 시를 지어 단풍의 운치를 시로 꾸몄지요. 이것이 시인의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신위가 밟고 간 단풍잎 떨어진 돌길은 시를 찾는 길 심시경(尋詩徑)입니다. 1813년 황해도 곡산 땅에 부사로 나갔을 때 맑은 물에 연꽃이 떠 있는 청수부용각(淸水芙蓉閣)과 탑상보다 조그마한 누각 소어탑루(小於榻樓), 벼루를 씻는 못 세연지(洗硯池)에서 시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걷던 길은 심시경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신위는 그로부터 20년 후인 1833년, 낙엽 지는 도성 안의 돌길을 심시경으로 삼았습니다. 낙엽을 밟노라면 누구나 시인이 될지니, 그가 걷는 길이 바로 심시경이겠지요.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낙엽 밟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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