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떠오르게 한다는 드라마 ‘대왕의 꿈’의 선덕여왕,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연상된다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허균, 안철수 무소속 후보를 빼다 박았다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윤태웅. KBS·CJ 제공
To 안철수 후보님께
단일화 문제로 스트레스 많으시죠? 저는 최근 방영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나온 극중인물 윤태웅(송종호 분)입니다. 그게 누구냐고요? 선거활동에 바쁘시니 모르실 수 있죠. 저는 젊은 나이에 정보기술(IT)업계에 뛰어들어 벤처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후 사업으로 번 돈을 모조리 사회에 환원합니다. 이후 대학교수로 활동하다 대선후보로 나서게 됩니다. 아내는 의사입니다.
“이건 나잖아”라는 생각 드시죠? 시청자들도 저만 보면 안철수 후보가 떠오른답니다. 혹자는 “안철수를 모델로 해서 만든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정말 궁금했습니다. “나는 정말 안 후보를 모델로 만들어졌나….” “우연의 일치인가, 의도된 창작인가.” 존재에 대한 근원적 고민이 시작된 거죠…. 안 후보님께 편지를 드린 이유입니다.
저뿐만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주변에 많더군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 나온 허균(류승룡 분)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답니다. 이 영화 주인공 하선(이병헌 분)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다 박았다는 관객들도 많아요. 실제 문 후보는 지난달 15일 영화를 본 후 “허균과 하선의 이별 장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밝혔더군요. 사극 ‘대왕의 꿈’(KBS1)에 나오는 선덕여왕(박주미 분)도 저에게 “선덕여왕이 첫 여성 대통령을 외치는 박근혜 후보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해줬어요.
그래서 PD와 작가를 찾아가 “왜 우리를 대선후보와 비슷하게 만들었나. 나중에 해당 후보가 대통령 당선되면 한자리 하려는 거냐”고 따졌습니다.
제작진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고 답했습니다. ‘응답하라 1997’을 만든 신원호 PD가 설명하더군요. 초기 제작단계에서 극중 인물에는 성격, 성장 배경 등 기초설정만 있답니다. 이후 실제 드라마,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극중 인물의 직업, 성장과정 등 세부사항이 더해집니다. 이때 실제 세상과 드라마 속 인물의 ‘연계’가 이뤄진답니다. 고아 출신인 저의 경우 이야기 전개에 따라 “IT 벤처 사업가로 가자” “대통령 출마 설정은 어떨까” 등 의견이 쏟아졌답니다. 회의 중 누군가 “이런 설정은 말도 안 된다”고 말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안철수도 있잖아”라고 반박했답니다.
올해는 대선이 이슈이니 제작진도 은연중에 영향을 받는 거죠. ‘광해…’의 황조윤 작가도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적 의도는 없다. 다만 중전 폐비 요구에 맞서는 하선의 모습에는 ‘대통령 되려고 조강지처 버리란 말이냐’라는 노 전 대통령이 투영됐다”고 밝혔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영화, 드라마 속 인물과 대선주자의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될 정도로 비슷해지려면 정치인들의 지원사격도 있어야 한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허균과 하선을 각각 자신과 노 전 대통령으로 연결시킨 문 후보처럼요. 박 후보 지지자들도 선덕여왕과 박 후보의 이미지를 연결시키는 마케팅 전략을 썼어요. 이미지 컨설팅 전문가인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은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들과 자신을 빗대면 원하는 리더십 이미지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정치컨설턴트들은 대중정치 시대가 ‘대통령 후보 판박이 캐릭터’ 탄생에 한몫했다고 강조합니다. 후보로서의 능력보다는 인간적 호감도가 표를 얻는 데 더 중요해지니 정치인들이 대중문화를 통해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으려고 한다는 거죠. 이에 드라마 속에 자신과 조금이라도 유사한 인물이 있으면 적극 홍보하면서 공감대를 넓혀가는 겁니다. 여기에 시청자들이 입소문으로 “드라마 속 A는 대통령 후보 B와 똑같다”고 방점을 찍어주면 완벽한 대선주자 판박이 캐럭터가 완성된답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저 같은 캐릭터가 많아지면 사회에 좋지 않다는 비판도 많았어요. 대통령 후보들이 정책 검증보다는 대중적 호감도를 높이려고 한다는 거죠. 이만 줄입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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