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후 한국학 연구한 첫 일본인 “보름달 뜨면 마을 들썩… 진도 밤문화 생생”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31일 03시 00분


이토 아비토 교수, 그가 전하는 ‘40년 전 진도의 추억’

40년간 전남 진도를 비롯해 한국 곳곳을 다니며 연구해온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이토 아비토 교수. 그가 카메라에 담았던 1972년 진도의 풍경은 이제 아득한 추억이 되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40년간 전남 진도를 비롯해 한국 곳곳을 다니며 연구해온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이토 아비토 교수. 그가 카메라에 담았던 1972년 진도의 풍경은 이제 아득한 추억이 되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1972년 전남 진도에서 주민들의 ‘밤 문화’는 달빛의 밝기에 좌우됐다. 전기가 안 들어오던 시절이어서 보름달이 환하게 뜨면 신이 난 동네사람들은 밤늦게까지 밖에 모여 술 마시고 노래하고 싸움도 하며 떠들썩했고 어린아이들은 공터에 나와 쥐불놀이를 했다. 들떠서 잠 못 들기는 소나 돼지도 마찬가지였다. 달빛이 어두운 날은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어 온 동네가 고요했다.

달빛에 따라 사람도 짐승도 생활리듬이 달라지던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주민들과 동고동락한 일본인 청년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인 최초로 한국을 문화인류학적으로 연구한 이토 아비토(伊藤亞人) 일본 와세다대 아시아연구기구 교수 겸 도쿄대 명예교수(69)다. 2002년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진도 주민들과 함께 진도학회 창립을 주도한 그가 30일 서울대에서 열린 진도학회 창립 10주년 국제학술대회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토 교수는 29일 기자와 만나 40년 전 ‘진도의 추억’을 유창한 한국어로 들려줬다.

도쿄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그가 1970년대 초 한국을 조사지로 택한 것은 일본에 한국을 연구하는 학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는 한국을 멸시하는 풍조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안 하면 내가 해보자’며 한국으로 향했죠. 세계화 마인드를 지녔던 부모님께서 제 이름을 ‘아시아 사람’이란 뜻의 아비토로 지어주셨는데, 한국을 모르면 진정한 아시아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1971년 제주도를 시작으로 진도, 경북 안동, 서울 등 전국 각지를 돌며 농민사회, 양반문화, 친족, 민간신앙, 상호부조조직, 새마을운동 등 다양한 소재를 연구해왔다. 특히 1972년 6개월간 머물며 농민사회를 조사했던 진도는 그에게 고향과 같다. 처음 진도에 왔을 땐 하루 세 끼 밥값과 방값을 포함해 한 달 하숙비 5000원을 냈지만 이후엔 하숙집 주인과 가족처럼 지내게 돼 하숙비도 안 내고 살았다.

고립된 섬 진도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쟁의 영향이 적어 전통문화와 지역색이 잘 보존돼 있는 데다 6·25전쟁 이후 치열했던 이념 대립도 비켜가 문화인류학자에겐 보물창고였다. “한국은 조직과 제도가 자주 바뀌고 사람들도 많이 옮겨 다니는 급변하는 사회인데, 진도는 역사적으로 소외 지역이었고 유동성이 약해 장기연구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진도의 고립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1972년 10월 유신을 들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됐지만 주민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제가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일본 방송을 듣다가 우연히 소식을 듣고 온 동네에 알렸죠.”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지 닷새쯤 지나 진도군 공무원과 이장들이 이동식 야간 영화 상영을 한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선언을 읽자 그제야 주민들이 사태의 중대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토 교수는 1970년대 한국에서 현지조사를 하며 겪고 느낀 이야기들과 직접 찍은 옛 사진을 엮어 2006년 일본에서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 2010년 나온 ‘그리운 한국마을’(일조각)이다. 지금도 해마다 진도를 찾아 지역주민이 주도하는 축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40년 사이에 진도와 육지 사이에는 다리가 놓였고 젊은이들은 하나둘씩 도시로 떠났다. “진도에 활기가 없어진 것이 아쉬워요. 요새는 아이 우는 소리, 싸우는 소리, 아줌마들 잔소리도 안 들리니까요.”

최근 이토 교수는 탈북자 15명과 함께 북한 주민의 생활 실태를 연구하고 있다. “북한이 개방되면 북한주민들은 경제 문화 정보 등에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지나치게 격차가 벌어져 있을 거예요. 국가가 아닌 시민사회 차원에서 격차를 줄여 북한 민중이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잘 기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한국학#이토 아비토 교수#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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