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나는 詩]가진 자와 못가진 자, 말이 많은 자와 없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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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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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은 우산이 있어도 비 오면 들고나가는 것은 그중 하나. 밥상이 화려해도 두 개의 입으로 먹을 수는 없는 법, 결국 음식이 들어가는 입은 하나. 우리 곁에는 유독 하나가 많다. 사람들은 결국 그 하나의 점으로 모인다. 하나의 점, 하루의 잠, 한번의 삶…. 나는 오늘도 달게 밥 한 공기를 비우고, 아랫목에 누워 느긋이 잠을 청한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이달에 만나는 시’ 10월 추천작으로 이민하 시인(45)의 ‘거리의 식사’를 선정했다. 8월 말 나온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모조 숲’(민음사)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가 추천에 참여했다.

어떤 시는 섬광처럼 찾아온다. 이런 시는 단숨에 ‘쓰이고’, 나중에 별로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 ‘거리의 식사’는 2010년 여름 시인에게 걸어 들어온 시다. “다른 원고들을 퇴고하고 있다가 별다른 동기 없이 그냥 섬광처럼 제게 왔어요. 시를 쓴 게 아니라 그냥 (머릿속에서) 꺼냈다고나 할까요.”

세상은 흔히 둘로 나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말이 많은 자와 없는 자. 하지만 이들은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고 시인은 말한다. 침묵이고, 휴식이고, 죽음이다.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살고 있지만 외롭지 않다고 봐요. 다 똑같은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결국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 거죠.”

이원 시인은 “현실이 가리고 싶어 하는 현실을 ‘환상’이라고 한다면 이민하의 시는 환상에 속한다. 절실해서 끔찍한 이 환상의 스크린을 ‘결정적 현실’이라고 부를 수 있다”며 추천했다. 김요일 시인의 추천사는 이렇다. “투명한 슬픔의 언어로 한 가닥 한 가닥 뽑아 직조한 이민하의 시편들은 잘 짜인 은빛 거미줄처럼 지독히도 아름답게 출렁인다.”

장석주 시인은 문정희 시인의 시집 ‘카르마의 바다’(문예중앙)를 추천했다. “비장하다. 거침이 없다. 물을 앞세워 마음의 비장과 거침없음을 노래한다. 시작과 끝, 생명과 죽음, 태초와 세기말 사이에서 물은 출렁인다. ‘물시’들로 가득 찬 시집이다.”

이건청 시인은 송상욱 시인의 시집 ‘무무놀량’(맷돌)을 추천하며 “진성성의 언어로 충일하다. 눈치 안 보고 제 길만을 딛고 온, 73세 순정 시인의 시편들이 소중한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평했다. 손택수 시인은 신현락 시인의 시집 ‘히말라야 독수리’(북인)를 추천하며 이렇게 평했다. “기꺼이 주례사비평을 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그것은 숨은 꽃향기를 맡지 못하고 산 세월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낯섦이 멀리 있지 않고 이렇게 가까이 있음을 알겠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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