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압도적 에너지와 테크닉…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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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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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리사이틀 ★★★★

9일 ‘금호아티스트 시리즈’의 첫 무대에서 격정적이면서도 정밀한 연주를 들려준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9일 ‘금호아티스트 시리즈’의 첫 무대에서 격정적이면서도 정밀한 연주를 들려준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냉전시대, 공산주의 국가의 문화적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1958년 창설된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현재까지 그 권위가 시들지 않고 있다. 9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금호 아티스트 시리즈’의 첫무대는 지난해 이 콩쿠르의 바이올린 부문에서 3위라는 귀한 성적으로 입상한 이지혜(26)가 장식했다.

1부의 첫 곡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10곡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도 난해한 작품으로 꼽히는 ‘크로이처’였는데 4개의 음이 겹치는 중음(重音)으로 시작돼 더블 스토핑(2현 이상의 음을 동시에 내는 주법)으로 이어지는 도입부부터 압도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1주제의 스타카토 섹션의 정밀함과 단칼에 내려치는 듯한 깨끗한 어택(기악에서 음의 발생 부분)까지 압도적인 음량과 더불어 잘 훈련된 테크니션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2악장에서 진행되는 변주부를 어떻게 다룰지도 유심히 지켜보았던 대목이었는데 1변주부터 3변주까지 세밀하면서도 조화롭게 그려냈다. 특히 피아니스트 우라베 유미코의 사려 깊은 반주가 운치 있는 2악장의 완성도를 더했다. 진폭이 심한 3악장은 1악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거의 극단의 다이내믹을 선보이며 내적 에너지를 완전 연소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닛케의 ‘바이올린을 위한 파가니니’는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주요 테마를 해체해 자신만의 어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분노와 광란의 분위기로 점철된 이 작품에서 이지혜는 장점인 빠르고 강렬한 운궁으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귀신 휘파람 소리 같은 플래절렛(현을 누르는 대신 살짝 대서 소리를 내는 연주법), 사이렌 같은 글리산도(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방법)로 공연장을 매캐한 공기로 뒤덮었다.

2부에서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역시 같은 맥락에서 상당히 기능적인 연주를 선보였는데 현대음악을 해석하는 탁월한 혜안을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 라벨의 ‘치간’은 비범함과 뒤틀린 유머가 조화를 이룬 호연으로 다채로운 톤의 변화를 구현한 성숙함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다만 느리거나 약하게 표시되는 음표가 간과되는 듯한 평면적 해석은 보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연주자로서 거의 완벽한 기량을 지닌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보다 성숙한 고찰 그리고 올바른 방향으로의 숙성일 것이다.

노태헌 음악칼럼니스트
#공연 리뷰#클래식#이지혜#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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