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미술관 ‘플레이그라운드’전&송은아트스페이스 천성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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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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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지만 불안한… 풍요롭지만 부조리한…

서울 아르코미술관의 ‘플레이그라운드’전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풍경을 ‘불안’이란 화두로 읽는 기획전시다. 시멘트로 만든 선인장 화분들과 고양이 설치작품을 선보이는 임선이 씨를 비롯해 9명의 작가들이 우리를 둘러싼 모호한 불안의 실체를 은유적 작업으로 드러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서울 아르코미술관의 ‘플레이그라운드’전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풍경을 ‘불안’이란 화두로 읽는 기획전시다. 시멘트로 만든 선인장 화분들과 고양이 설치작품을 선보이는 임선이 씨를 비롯해 9명의 작가들이 우리를 둘러싼 모호한 불안의 실체를 은유적 작업으로 드러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얼기설기 만든 조악한 탁자에 각양각색의 선인장 화분이 줄지어 놓여 있다. 살아있는 식물 대신 시멘트로 제작한 인공적 선인장은 뾰족한 가시를 숨기고 있어 섬뜩하다. 그 앞 녹슨 좌대 위에 길고양이 조각이 놓여 있다. 인간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소리 없이 숨어 다니는 고양이의 경직된 모습에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겹친다.

소통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최수앙씨의 설치작품(위)과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을 표현한 천성명 씨의 조각.
소통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최수앙씨의 설치작품(위)과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을 표현한 천성명 씨의 조각.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17일∼9월 28일 열리는 ‘플레이그라운드’전에 나온 임선이 씨의 설치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화두로 ‘불안’을 선택했다. 밖에선 평화롭게 보여도 나름대로 위계와 차별이 존재하는 어린이 놀이터처럼 겉과 속이 다른 현실을 예술가의 관점으로 짚는 자리다. 고원석 큐레이터는 “공포와 달리 불안은 대상이 불분명할 때 생기는 두려움”이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과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등 달갑지 않은 지표에서 1위를 차지한 우리 사회는 안정과 조화를 이룬 것 같지만 그 이면에 갈등과 모순이 잠복해 있음을 짚고자 했다”고 말했다.

우리를 옥죄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천성명 씨의 ‘부조리한 덩어리’전에서도 감지된다(9월 22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 작가는 문제 해결에서 과정보다 결론을 중시하는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을 공간설치작품으로 연출했다.

○ 낯설고 불편한

소리를 조각의 재료로 활용하는 김기철 씨는 종묘에 내리는 봄비 소리, 해인사의 새벽 예불, 경포대의 파도소리 등 자신이 채집한 아름다운 소리를 일상의 소리와 뒤섞어 듣는 이를 오싹하게 만든다. 5년 동안 원전 지역을 답사했던 사진가 정주하 씨는 평온하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과 원전시설을 대비시킨다. 최수앙 씨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멀리 떨어진 설치작품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선별적으로 듣는 일방형 소통이 지배하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플레이그라운드’전에서는 개별 작품들이 조각 퍼즐처럼 어우러져 한국의 불안한 풍경을 드러낸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황량한 물가에서 낚시하는 사람 등 일상을 낯설게 접근한 공성훈 씨, 미군기지가 있는 동두천의 무연고자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평화로운 풍경에 은닉된 위험을 암시한 김상돈 씨, 어두운 복도와 지하주차장 등 버려진 공간을 무대로 과거에 벌어졌을 법한 살벌한 폭력의 징후를 읽어낸 노충현 씨 등. 작가들은 직설적으로 불안을 말하지 않지만 평범한 대상의 내면에 존재하는 낯설고 불편함을 파헤쳐 문제적 현실을 직면하도록 이끈다.

○ 기괴하고 생뚱맞은

‘그림자를 삼키다’ 연작을 통해 자기 내면을 탐구해온 천성명 씨는 이번에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에 눈 돌린 새로운 작업을 선보였다. 전체에서 떨어져 나온 부분이 다른 것들과 연결되지 못한 생뚱맞음을 표현한 전시제목처럼 2∼4층 전시장에 머리가 없거나 팔다리가 떨어진 몸, 인체의 장기가 맥락 없이 등장한다. 차근차근 소통의 과정을 거치기보다 너무나도 빨리 대답과 결론을 강요하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생뚱맞은 상황을 은유한 작업이다.

물질은 풍요롭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나날이 커지는 우리들의 삶. 두 전시는 불안과 부조리에 무감각해진 사회와 개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미술#전시#아르코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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