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랐네, 실감영상 vs 훤하네, 인물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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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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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트맨 vs 스파이더맨 누가 더 셀까… ‘원조 영웅’ 슈퍼맨이 본 흥행대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두 ‘다크 영웅’ 배트맨(왼쪽)과 스파이더맨이 올여름 첫 흥행 맞대결을 벌인다. 워너브러더스·소니픽처스 제공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두 ‘다크 영웅’ 배트맨(왼쪽)과 스파이더맨이 올여름 첫 흥행 맞대결을 벌인다. 워너브러더스·소니픽처스 제공
‘배트맨 vs 스파이더맨’

두 영웅이 올여름 사상 초유의 맞대결을 벌인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16일 현재 4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고, 19일에는 배트맨 시리즈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찾아온다. 1989년 팀 버턴 감독의 ‘배트맨’과 2002년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이 첫선을 보인 이후 두 슈퍼히어로의 영화가 같은 시기에 개봉한 것은 처음이다. 누가 승리할 것인가. 할리우드의 ‘원조 맨’ 슈퍼맨에게 가상 관전평을 들어봤다.

안녕? 크립톤 행성 출신 슈퍼맨이야. 1979년 내 이야기가 영화로 처음 만들어진 이후 33년이 흘렀으니 많이 늙었지. 나보다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은 서로 닮은 점이 많아. 둘 다 부모의 죽음 때문에 뜻하지 않게 정의를 위해 싸우는 전사가 됐지. 신분을 드러낼 수 없어 가면과 어둠 뒤에서 몰래 싸워야 하는 점에서 둘 다 ‘다크 히어로’이지. 내가 지구를 빙빙 돌려 시간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초능력자인 데 비해, 두 영웅은 인간의 모습에 더 가까워. 기껏해야 거미줄을 쏘고 갈고리를 걸어 나는 정도니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마지막 편인 ‘…라이즈’를 보니 참, 예술적이더군. 컴퓨터그래픽(CG)을 최대한 자제하고 세트를 세워 실사 촬영했다지. 악당들이 미식축구장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에서는 CG 대신 엑스트라 1만1000명을 동원했다고. 실제 같은 질감에 천착하는 놀런 감독의 장인 정신에 고개가 숙여지네. ‘놀런 마니아’들은 또 한 번 열광할 것 같아.

헌데 제작비 2억5000만 달러(약 2800억 원)에 비해 영화가 작아 보여. 배트맨(크리스천 베일)과 악당 베인(톰 하디)이 첨단무기 대신 고교생 일진처럼 주먹으로 싸우니 원. ‘트랜스포머’에서 도시 하나를 통째로 갈아엎어버리는 ‘규모의 영상’에 익숙한 한국 관객은 뜨악할 수도 있겠더군.

반면 ‘…스파이더맨’은 이전 시리즈보다 분위기가 밝아졌어. 감독이 샘 레이미에서 마크 웹으로, 남녀 주인공도 교체됐기 때문으로 보여. 실업자였던 스파이더맨을 발랄한 고교생으로 바꾸니 대중성이 높아진 것 같아. 하지만 전작의 고뇌하는 영웅이 빚어내는 끈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히어로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악당들이지. ‘…라이즈’의 악당 베인은 전편의 ‘조커’에 비해 약해. 조커 역으로 악의 극한을 보여줬던 배우 히스 레저가 없기 때문인가. 베인은 이종격투기 선수 표도르 에밀리아넨코처럼 물렁살로 배트맨의 주먹에도 끄떡없는 모습인데, 조커의 비열함이 주는 쾌감이 없더군.

‘…스파이더맨’의 도마뱀 인간은 기존 캐릭터를 반복할 뿐이야. 전편의 악당들처럼 정상인과 악당 사이를 오가는 설정이 진부해. 슈퍼맨에서 자기 땅값 올리려고 캘리포니아를 수장시키려는 엉뚱하고, 때론 귀여운 악당 렉스 루더 같은 인물은 없나.

여자친구들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던데. ‘…라이즈’의 ‘캣 우먼’역 앤 해서웨이는 충분히 매력적이야. 해서웨이는 선과 악 중 어느 쪽으로 분류할 수 없는 묘한 캐릭터를 잘 표현했어. 전편에서 스파이더맨을 매번 곤경에 빠뜨리던 ‘속 터지는’ 여친은 이번에는 주체적인 경찰서장의 딸로 바뀌었지.

철학적이고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라이즈’가 훨씬 좋겠지. ‘악을 척결하기 위해 악을 동원하는 것은 정의인가’, ‘타락한 문명은 타도의 대상인가’ 등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 주제 같아.

이제 놀런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됐군. 배트맨, 자네도 전설이 되는 건가. 걱정하지 말게. 할리우드는 항상 새로운 영웅을 만들어 왔으니까. 아이언맨과 엑스맨이 벌써 옆집에 이사와 있더군.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배트맨#스파이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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