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이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30일∼이달 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선보인 창작 현대발레 ‘포이즈’는 군더더기 없는 세련미로 고전발레와는 또다른 매력을 뿜어냈다.
안성수의 안무는 음악 해석이 뛰어나다는 평판답게 이 작품을 위해 고른 쇼스타코비치의 곡들에 어울리는 깔끔한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추상적인 이미지 위주의 현대물인데도 음악에 딱딱 맞아떨어지는 동작들 덕분에 지루함이 없었다. 패션디자이너로 무대와 의상은 물론이고 연출까지 맡은 정구호 씨는 전체적으로 빨강, 하양, 검정 등 최소한의 색상을 사용하면서도 조명과 세트 변화를 통해 이미지가 강렬한 무대를 연출했다.
작품에는 균형(포이즈)이라는 키워드가 다양하게 녹아들었다. 공연 전체를 가로지르는 가장 큰 줄기는 변증법적 논리의 세 단계를 뜻하는 ‘정반합(正反合)’의 흐름이었다. 정반합은 각각 붉은색, 흰색, 검은색으로, 시간의 흐름은 지름 16m의 원형 회전판으로 상징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생기고 이로 인해 신구(新舊)의 갈등, 혼란이 촉발되지만 결국 안정된 상태, 즉 균형에 도달한다는 의미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주제음악으로 쓰인 쇼스타코비치의 ‘축전 서곡’이 쾅쾅 울리는 가운데 흰옷의 무용수들이 빠르고 역동적인 동작의 군무로 무대를 열었다. 붉은 톤의 조명으로 바뀌면 김주원과 이영철, 이은원과 정영재가 등장해 장중한 음악에 맞춰 느리고 우아한 2인무를 펼쳐 흐름을 전혀 다른 분위기로 이끌었다.
공연은 이렇듯 다른 색깔, 다른 움직임의 장면들이 교차하면서 점점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해갔다. 2막에선 붉은색과 흰색의 교차가 더욱 빨라지고 천장에 매단 25개의 패널도 파도처럼 요동치며 혼돈의 상황을 그려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의 10번 교향곡이 연주되는 2막 결말 부문에서 모든 무용수가 검은색 옷을 입고 함께 어우러졌다.
춤 동작 중에는 다리 양쪽에 번갈아 체중 이동을 하면서 역동적으로 균형을 유지하거나 두 사람이 발끝은 붙이고 서로 맞잡은 팔은 쭉 뻗어 삼각형 형태로 균형을 잡는 동작이 자주 사용됐다. 무용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쉼 없는 균형 잡기의 미학이다.
1일 공연은 15년간 국립발레단 간판 발레리나였던 김주원이 국립발레단 소속으로 선 마지막 무대였다. 그는 때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쇼스타코비치의 음표들 속에서도 유유자적 춤사위를 펼치는 ‘고수’의 경지를 관객에게 선사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