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선생도 벼랑 위 ‘토끼비리 길’ 지날땐 오금 저렸을 것”

  • 동아일보

■ 부산대 민족문화硏 ‘옛길’ 답사 프로그램 동행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과 연결된 성벽. 안내를 맡은 한정훈 박사(성벽을 등지고 설명하는 사람)는 “길이 곧 ‘새로운 기회’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문경=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과 연결된 성벽. 안내를 맡은 한정훈 박사(성벽을 등지고 설명하는 사람)는 “길이 곧 ‘새로운 기회’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문경=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벼랑 위 토끼비리(토끼벼랑) 길은 폭이 30cm가 채 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서울과 부산을 이어주던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준했던 곳이었지요. 좁디좁은 길이지만 영남 유생들이 출세를 꿈꾼 길이요, 보부상들의 애환이 서린 길입니다. 크게는 중국과 일본의 문명이 교차하던 길이었고요.”

15일 오후 경북 문경시 고모산성 인근의 토끼비리 길.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산하 인문한국(HK)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이 마련한 ‘옛길을 걷다’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 45명은 한정훈 씨(부산대 사학과 박사·한국교통사)의 설명에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하루 동안 진행된 답사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안에 있는 옛길 박물관 관람, 문경새재 제1문인 주흘관(主屹關) 인근 걷기, 신라시대에 축조된 고모산성과 인근 토끼비리 길, 꿀떡고개(꼴딱고개) 및 석현성 걷기, 삼강주막 체험 등으로 진행됐다.

안내를 맡은 한 박사가 토끼비리 길에 서서 “김시습 이황 정약용 같은 이름 높은 선비들과 영남에 부임하는 신임 관리들도 여기를 지날 때는 무서워서 오금을 제대로 못 폈을 겁니다”라고 말하자 참가자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박사는 길의 곳곳에서 역사를 넘나든 서민들의 마음과 애환을 읽어냈다. 주흘관 옆에 있는 성황당에는 이날도 기원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 박사는 이를 보며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포위됐을 당시 이 성황당의 여신이 예쁜 색시로 나타나 이조판서 최명길(훗날 영의정)에게 청나라와 화친을 하라고 얘기함으로써 항전을 끝내게 됐다는 얘기가 있다”며 “백성들 처지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는 것이 나았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성황당의 전설로 전해지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을 오간 조선통신사가 갈 때는 죽령을 넘는 영남좌로를 이용하고 귀경을 할 때는 영남대로를 이용하는 등 길을 달리한 것도 이들을 영접하는 백성들의 수고를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길이 산을 만나면 재(령·嶺)가 되고 강을 만나면 나루터가 된다. 답사 일정은 나루터 자리에 복원된 경북 예천의 삼강주막에서 끝났다. 부인 손에 끌려 참석했다는 하만철 한국선박기술 부사장은 “우리 옛길에서도 실크로드 못지않은 문명·문화 교류가 이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답사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학생들에게 더 나은 인문학 지식을 전해주고 싶어 참여했다는 부산 구덕고 김서영 교사는 “학교에서 진행을 맡고 있는 인문학 강좌를 기획하는 데 소중하게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연구소가 기획한 2차 옛길 답사는 10월 19일 우포늪과 석빙고, 진흥왕척경비 등이 있는 경남 창녕군 일대를 돌아보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문경=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이황#토끼비리#옛길#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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