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장희의 미국 스케치 여행]<1>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지 노스캐롤라이나 킬데빌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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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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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가 붕 뜨자, 인간은 창공의 주인이 되었다

굉음을 내며 달리던 비행기가 이내 지표 위를 사뿐히 떠오른다. 공항에서부터 설레던 여행의 기쁨은 이 순간 절정에 이른다. 이 무겁고 거대한 쇳덩어리가 떠오르는 일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비행기의 발명은 평면에서만 생활하던 인간의 영역을 3차원 공간으로 확장시켰다. 인류 문명의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가져 온 일대 사건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시작은 불과 100여 년 전인 190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아우터뱅크스의 키티호크 지역에서 이뤄졌다. 두 사람의 젊은이,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에 의해서였다.

라이트 형제의 고향은 오하이오 주 데이턴이란 곳이었다. 네 살 많은 형 윌버는 조용하지만 열정적이었고 책을 즐겨 읽던 몽상가였다. 그에 반해 동생 오빌은 말 잘하는 멋쟁이로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둘은 만들기를 무척 좋아해 고교시절 인쇄기를 직접 만들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이후 자전거 관련 회사를 차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글라이더 개발의 선구자였던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이 시험비행 중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항공기 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당시 항공기 발명이 더뎠던 것은 위험성 때문이었다. 하늘을 나는 미완성 기계를 누군가가 직접 타고 운전해야 하는 위험 말이다. 하지만 이 형제는 치밀한 계획으로 위험을 상쇄하기로 했다. 그들은 일단 기상청을 통해 전국에서 바람이 가장 세면서도 일정하게 부는 곳을 조사했다. 그곳이 바로 아우터뱅크스였다. 이곳은 노스캐롤라이나 동부 해안선 160km를 띠 모양으로 막아선, 기다란 섬의 군락이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이 만들어낸 모래언덕들로 이루어진 이곳 섬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나무나 관목이 별로 없었다. 모래만 가득한 지형은 부드럽고 안전한 착륙에 이상적이었다.

키티호크 지역의 킬데빌힐스란 언덕이 최종 시험 장소로 선택됐다. 부근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기에 바람을 이용하기에 최적이었다. 그들은 먼저 무인글라이더로 충분히 비행 가능성을 시험한 뒤 글라이더에 직접 탑승해 조종술을 익혔다. 형제는 조종기술이 제작기술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1903년 12월 17일 아침, 드디어 역사적인 날이 밝았다. 동전으로 정한 순서에 따라 동생 오빌이 그들의 동력비행기인 ‘플라이어 1호’에 먼저 올랐다. 형제는 기체에 시동을 걸기 전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 악수를 했다. 한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서로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처럼 작별 인사하는 가족 같았다고 한다. 드디어 오전 10시 35분, 레일을 따라 비행기가 천천히 앞으로 미끄러져 움직였다. 그리고 옆에서 따라 달리던 형 윌버가 승강타를 잡아당기자 이내 기체가 떠올랐다. 인류의 첫 비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기보다 무거운 기계(이미 19세기에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기계인 기구가 발명돼 있었다)에 사람을 태우고 나는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역사적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반인은 무관심했고 언론이 그들을 불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는 영광은 형제를 제외하고는 단 5명만 누릴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그 유명한 킬데빌힐스에 올랐다. 높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구릉이 거의 없는 아우터뱅크스의 지리적 특징 때문에 주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1층이 비어 있는 이 지역 특유의 집들 너머로 높은 파도의 대서양이 넘실대는 장관이 보였다.

언덕에 오르기 전부터 쉬지 않고 불어대는 바람은 그칠 기미가 없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띄우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을 그 바람은 먼 미래에도 똑같이 불고 있으리라. 나도 그 바람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바람은 내 손이 날개였다면 몸이 둥실 날아오를 듯한 강렬한 느낌을 전해줬다.

나는 비행기가 떠오르던 그 순간 형제가 느꼈을 설렘을 상상해보며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멀리 하얀색 여객기 한 대가 비행운을 남기며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비행기는 같은 공간, 같은 바람 속에서, 하지만 훨씬 높은 창공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라이트 형제#미국 스케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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