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까지 7년간 그는 한국 발레계의 ‘왕자’였다. 고등학교 때 뒤늦게 발레를 시작한 그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러시아 유학을 거쳐 2004년 국립발레단에 특채 입단했을 때 무용계는 환호했다. 키 184cm에 서구형 체형, 순발력과 유연성, 풍부한 표정을 겸비한 그는 단번에 스타로 올라섰다. ‘백조의 호수’ ‘왕자 호동’ 등에서 왕자 역을 도맡았다. 하지만 지난해 ‘폭행사건’으로 그는 왕좌에서 추락했고 광야로 내몰렸다. 김현웅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31·사진)의 이야기다.
1년여가 흐른 15일, 김 씨는 발레복을 입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성암아트센터 작은 무대(200석 규모)에 섰다. 스승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김선희 교수가 제자들을 모아 마련한 무료 공연. 연습 중에 오른 정강이뼈를 다친 그는 5분짜리 소품 ‘아다지오’에서 학교 후배 심현희 씨의 파트너로 느린 춤사위를 펼쳤다. 관객이 130명 정도였던 이날 무대가 그에겐 한국에서 마지막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 워싱턴 발레단의 입단 통보를 받은 그가 8월 미국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생각하기 싫은 악몽’으로 표현한 ‘그 사건’에 대해 물었다. 외부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3월 25일 국립발레단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역시 수석무용수인 이동훈 씨(26)를 때려 전치 4주의 부상을 입혔다는 것. 줄곧 침묵해 왔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만취 상태에서 벌어진 일인데 후폭풍이 거셌어요. 제가 큰 잘못을 했지만 이후 고소와 합의 과정, 7년간 몸담았던 발레단으로부터 사직 권유 등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그는 당시 일부 언론의 보도 내용에 대해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어느 신문의 보도처럼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에 대한 견제 이런 건 전혀 아니었어요. 동훈이와는 절친한 선후배 사이였고 경쟁심 같은 것도 없었어요.”
얘기를 들어 보니 평소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그가 주도한 술자리였고 혈기왕성한 두 젊은이의 술자리 다툼이 주먹다짐으로 번진 사고로 여겨졌다. 고소는 양측 합의로 풀렸지만 이후 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이 씨는 16일 통화에서 “이미 용서했고 화해했다. 현웅이 형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생각에 비참했는데 지금은 더 떨어질 데가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는 김 씨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장기 플랜, 그런 건 없다. 오늘이 어제보다 더 나은 날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수영선수를 그만두고 뒤늦게 발레를 시작할 때처럼 그는 다시 인생의 갈림길에 섰다. 비운의 발레리노로 남을지,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게 될지는 그 자신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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