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한식 ‘쿠킹클래스’ 현장 “저 많은 고추장 다 넣나요?” 일본 주부들 입이 딱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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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참기름은 향이 달라요. 하지만 일본 참기름을 쓰셔도 괜찮아요.” 신수경 청정원 수석셰프(왼쪽)의 설명에 한국과 일본 주부들이 귀를 기울였다. 곧 “일본에서는 죽순이 대표적인 봄철 음식인데 한국에서는 대표적인 봄철 음식이 뭐예요”라는 한 일본 주부의 질문이 이어졌다. 도쿄=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한국과 일본의 참기름은 향이 달라요. 하지만 일본 참기름을 쓰셔도 괜찮아요.” 신수경 청정원 수석셰프(왼쪽)의 설명에 한국과 일본 주부들이 귀를 기울였다. 곧 “일본에서는 죽순이 대표적인 봄철 음식인데 한국에서는 대표적인 봄철 음식이 뭐예요”라는 한 일본 주부의 질문이 이어졌다. 도쿄=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프라이팬 위에 올려진 다진 마늘과 쇠고기에서 맛있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고추장 200g 한 통이 바닥까지 싹싹 긁어져 그 위에 얹어진다.

“에∼??”

여기저기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정말 저 많은 고추장을 다 넣느냐”며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목소리들이 짧은 웅성거림으로 이어졌다. 요리 선생님으로 나선 신수경 청정원 수석셰프의 손길을 쫓아가기 바쁜 35명의 주부에게 사회자가 덧붙였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과감하게 (고추장을) 쓰지 못합니다.”

25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 미나토 구에 자리 잡은 한 요리학원에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뒤섞여 시끌벅적한 이곳은 대상 청정원이 마련한 ‘한일 쿠킹클래스’. 최근 일본에서 불고 있는 ‘음식 한류’를 확대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행사에는 한국 주부 10명으로 구성된 ‘자연주부단 일본원정대’와 일본 주부 15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각각 96 대 1과 13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 고추장의 ‘매운맛’

스즈키 요코(鈴木洋子·58) 씨가 연신 기침을 해댔다.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좀 전에 배운 대로 고추장 한 통을 다 넣고 쇠고기와 다진 마늘을 볶기 시작한 그녀였다.

“맵네요.”

집에서도 자주 고추장으로 직접 요리를 하지만 고추장의 ‘매운맛’은 매번 새롭다.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는 남편 덕분에 그녀도 자연스럽게 한식을 접하게 됐다. 8년 전부터는 1년에 두 번 정도 한국을 찾는다. 한국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드는지를 꼭 물어본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종업원이나 식당 주인이 한국말로 가르쳐주는 것을 소리 나는 대로 일본어로 적어와, 한국말을 잘하는 친구에게 묻는다. 일본 요리에는 없는 파절이도 그렇게 배웠다.

“한 번 한국에 갈 때마다 김치와 고춧가루를 많이 사 와요. 평소에도 한국 물건을 파는 가게에 가서 양념이나 재료들을 사고요. 남편도 한국 요리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분주히 손을 놀리던 그가 웃으며 말했다.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한 일본 주부가 일본 글자 아래에 ‘주물주물’이라고 한글로 쓰고 있었다. 함께 요리를 하고 있는 이정숙 씨(41)가 가르쳐 준 말이었다. “그런데 마늘은 안 들어가는데…. 어떡하지?” 이 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작은 실수가 있었나 보다. 두 사람은 ‘봄죽순 떡갈비’를 함께 만드는 중이었다.

○ 피부와 한식의 관계?

“전 김정훈 씨 팬이에요. 지금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하고 있잖아요.”

다케다 마유미(武田眞弓·45) 씨에게 다가가자 웃으며 말을 건넨다.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들. ‘겨울연가’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그 뒤에 한국 음악을 듣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한국 음식까지 좋아하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제가 좋아하는 김정훈 씨가 평소 먹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집에서 가끔 잡채와 순두부찌개 등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다케다 씨는 “1년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한국어 학원에서 교재로 한국 요리 레시피가 적혀 있는 달력을 주기도 해 참고가 많이 됐다”고 말했다. 요즘엔 일본 잡지나 신문에서도 쉽게 한식 레시피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녀는 한국산 마시는 식초를 이용해 ‘샹그리아’와 비슷한 칵테일을 만들어 남편과 마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샹그리아는 레드와인에 각종 과일을 섞은 칵테일로 유럽에서는 여름철에 즐겨 마신다.

“마시는 식초에 오렌지주스와 탄산, 직접 담근 매실주 등을 넣고 만드는 거예요. 제가 직접 개발한 레시피죠. 평소에도 음료용 식초를 즐겨 마시고요.”

현재 일본에서는 인기 걸그룹 ‘카라’를 광고모델로 기용하고 있는 한국산 마시는 식초(홍초)의 인기가 대단하다. 2010년 14억 원이었던 대상 ‘마시는 홍초’의 일본 내 매출은 지난해 약 36배(500억 원)로 커졌다.

다케다 씨는 이번 겨울에는 전주 한옥마을을 찾아 한국 요리와 역사를 배우는 프로그램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나이를 묻자 그녀가 수줍게 대답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옆에서 듣고 있던 이정숙 씨가 바로 “언니”라고 외쳤다. “정말 한국 사람들은 나이 하나는 칼 같이 따져요.” 다케다 씨가 웃었다.

“피부가 왜 이렇게 좋아요? 다들 필러(인체 피부 구성 성분을 생합성한 충전재를 볼륨이 필요한 곳에 주사하는 성형술의 일종)하시는 거 아니에요?”

또 다른 테이블에서 가와시마 유키코(川島幸子·34) 씨가 묻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있던 김선희 씨(47)가 “한식을 먹어서 그렇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가와시마 씨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일본 주부들의 또 다른 관심은 한국 주부들의 피부였다. 몇 번씩이나 “피부가 좋다” “날씬하다”는 말들이 귓가를 스쳤다.

요리가 끝나고 시식시간이 이어졌다. 양국 주부들은 자연스럽게 잘도 어울렸다. 말이 잘 안 통할 때는 휴대전화에 있는 사전으로 단어를 찾아가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e메일 주소도 서로 교환했다. 시식이 끝나고 일본 주부들이 비닐팩을 찾기 시작했다. 남은 비빔밥을 싸가지고 가겠다는 것. 한국 주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비닐팩에 비빔밥을 담아주기 시작했다.

[채널A 영상] “매워도 맛있어” 음식 한류 어디까지 왔나

○ 신오쿠보 거리의 음식 한류


오후 4시. 요리교실을 마치고 도쿄의 신오쿠보(新大久保) 거리를 찾았다. 가게 외벽에 설치된 TV에서는 한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이 노래와 함께 흘러 나왔고 한류 스타들의 사진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신오쿠보는 일본 간토 지역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모여 살고 있는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왔다. 그러나 불과 3년여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지역이 아니었다. 유흥업소와 러브호텔로 가득 찬 우울한 동네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한국 음식점이나 한류용품 상점, 한국 슈퍼마켓 등이 대거 들어서며 이제는 일본 내 한류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지난해 일본에 머물렀다는 한 30대 한국 주부는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다. 신오쿠보의 레스토랑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주말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신오쿠보 역에서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세이코도(盛好堂) 서점에 들어섰다. 점원 미요시 마사미(三好麻沙美·24) 씨에게 “한국 요리책을 찾는 사람도 있나요”라고 물었다.

“하루에 10명 정도는 한국 요리책을 찾으세요. 아무래도 직접 요리를 하는 50대 주부가 많죠.”

그녀가 직접 책을 보여주겠다며 기자를 서점 한구석으로 이끌었다. 일본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가는 책이라는 설명과 함께 일본 NHK방송에 나왔던 한국 요리들을 묶은 책 한 권을 보여줬다.

한국 슈퍼마켓에서는 장바구니에 고추장 두 통과 삼겹살을 담고 장을 보고 있던 스즈키 야스코(鈴木安子·60) 씨를 만났다. “고추장은 야채를 볶거나 닭갈비 만들 때 쓰려고 샀어요. 고추장 정말 좋아해요.” 뭘 만들려고 하는지를 묻자 그녀가 한국말로 띄엄띄엄 답했다. 스즈키 씨는 장도 보고 친구들과 식사도 할 겸 사이타마(埼玉) 현에서 지하철을 타고 무려 1시간 반이나 걸려 신오쿠보 거리를 찾았다. 이미 5년 정도 한국어 공부를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갑자기 그녀가 피부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 여자들이 보기에 한국 여자들이 정말 예뻐요. 먹는 것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요?”

그녀 옆으로 20대 일본 여성 두 명이 가족에게 사다 줄 고추장을 고르고 있었다.

도쿄=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한식#쿠킹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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