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교수가 한글 詩로 ‘실향민의 아픔’ 노래

  • 동아일보

■ 테레사 현 요크대 교수 ‘판문점에서…’ 출간

한글로 먼저 쓰고 영문으로 옮겨 적었다. 이달 말 2개 언어로 쓴 생애 첫 시집 ‘판문점에
서의 차 한잔’을 펴내는 테레사 현(현태리) 캐나다 요크대 교수.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글로 먼저 쓰고 영문으로 옮겨 적었다. 이달 말 2개 언어로 쓴 생애 첫 시집 ‘판문점에 서의 차 한잔’을 펴내는 테레사 현(현태리) 캐나다 요크대 교수.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 자 한 자 눌러쓴 한글 시들로 생애 첫 시집을 내는 미국인 시인이 있다. 이달 말 나오는 시집의 이름은 ‘판문점에서의 차 한잔’(시와시학·사진), 시인은 테레사 현(현태리) 캐나다 요크대 인문학부 교수다. 1990년대 초부터 한글 시를 쓰기 시작했고, 2003년 시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대학 특강 등을 위해 2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시인은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기자에게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봄인 줄 알았더니 벌써 여름이네요. 벚꽃이 벌써 다 져서 아쉬워요. 봄이면 벚꽃을 보러 여의도에 가곤했는데….”

지는 벚꽃을 아쉬워하는 그에게서 한국적 정서가 물씬 풍겼다. 나이를 물었더니 “시인에게 나이는 없어요”라고 했다. “어느 한국 시인이 한 말이에요. 멋진 말이죠. 저도 나이는 얘기 안 할래요.” 이국의 시인은 한국에서 시를 배우며 시인의 신비주의까지 익힌 듯했다.

미국 뉴욕주립대를 졸업하고 아이오와주립대에서 프랑스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시인은 1984년부터 8년간 경희대에서 프랑스문학 교수로 강단에 섰다. 비교문학에 관심이 많은 그는 자연스레 한국문학을 접하고 문인들과 교류했다. “한국에는 좋은 시가 아주 많아요. 한국은 ‘시인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매일 한 편 이상 한국 시를 읽으려고 하죠.”

캐나다로 간 뒤에도 그는 매년 여름 한국을 찾아 문인들을 만났고, 고은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고은 선생님은 학회나 세미나에서 여러 번 뵈었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등단 기회를 주시면서 ‘앞으로는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30년 가까운 한국과의 인연 때문일까. 그의 시는 외국인이 썼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한국적 정서가 흠뻑 묻어난다. 실향민의 아픔을 그린 표제작 ‘판문점에서의 차 한잔’이 특히 그렇다.

‘관광객 꽉 찬 휴게소/오랜만에 형제끼리/모였다/진달래 활짝 핀 봄날 오후//인파의 소용돌이 속/큰형님 창밖을 내다본다/…저 북쪽 흐린 하늘/보이지 않는 얼굴/…아직도 살아 있을까//두런두런 이야기들 하는데/큰형님 훌쩍 마시네/눈물 한잔’

요크대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현 시인은 전 세계로 확산되는 한류가 반갑다고 했다. 1992년 한국 관련 강의가 개설될 때만 해도 수강생이 4, 5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제 시집을 영어권에서도 출간해 한류를 확산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쓸 겁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문학#테레사#현태리#판문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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