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팻말 든 남자… 핫팬츠 입은 여자’ 명동 50년史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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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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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미술관서 임응식 사진전

‘구직’(왼쪽), ‘핫팬츠’(오른쪽)
‘구직’(왼쪽), ‘핫팬츠’(오른쪽)
사진을 보면 볼수록 흥미롭다. 명동을 걷는 여인들의 옷차림에서 시대별 패션이 한눈에 펼쳐진다. 롱스커트에서 미니와 핫팬츠로, 나팔바지와 일자바지, 롱드레스에 모피코트까지. 통기타 문화를 이끈 오비스 캐빈, 분식집 리빠똥, 커피숍 돌체 등 중년 이상 세대의 기억에 남은 명동거리의 명소도 재회할 수 있다.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임응식-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전은 사진의 기록성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새삼 깨우쳐준다.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 임응식(1912∼2001)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그가 50년 넘게 애착을 갖고 기록한 명동사진을 비롯해 작품세계 전모를 재조명함으로써 한국 근현대사의 시공간으로 추억여행을 떠나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이경민 대표가 기획한 전시는 미공개작 40점을 비롯해 2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그의 일생이 곧 살아있는 한국 사진사’란 말을 실감나게 한다. 1930년대 예술사진과 모더니즘 계열의 포토그램, 6·25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촬영한 보도사진, 리얼리즘을 토대로 일상을 직설적으로 기록한 50년대 ‘생활주의’ 사진,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작업한 고건축 사진과 예술가들의 초상사진 등. 사진의 폭넓은 스펙트럼은 한국 사진사의 전개과정과 오롯이 겹쳐진다.

1세대 제자로 명동거리를 그와 함께 누볐던 원로 사진가 홍순태 씨는 이렇게 스승을 추모했다. “사진에 살고 사진에 죽은 분이었다. 생활주의 사진만 집착했다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왜 평생 명동 사진을 찍었겠는가. 명동은 한국 사회 발전의 축소판이자 얼굴로, 그곳을 통해 현대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우리 미래와 발전상을 내다본 것이다.”

그가 역사 문화적 관점에서 현실을 집약적으로 드러낸 명동사진에서 시대의 일상을 그렸다면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 전쟁고아의 사진에선 시대의 우울을 증언했다.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구직’ 팻말을 가슴에 안고 선 남자의 모습은 여전히 가슴 찡하다.

내년 2월 12일까지. 2000∼5000원.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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