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우’와 ‘울’을 쪼갠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7일 03시 00분


문학과지성 시인선 401호, 김혜순 ‘슬픔치약 거울크림’

김혜순 시인. 동아일보DB
김혜순 시인. 동아일보DB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 지난달 400호 기념시집 ‘내 생의 중력’을 낸 데 이어 최근 401호 시집으로 김혜순 시인의 ‘슬픔치약 거울크림’을 출간했다. 기념시집이 300호대 시집의 대표작들을 엮은 것임을 감안하면 이번 시집으로 본격적인 400호대 항해를 시작한 셈.

문학과지성사는 401호의 상징성을 감안해 이 회사와 인연이 깊은 원로 작가에게 출간 기회를 주려고도 했지만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취지에 맞춰 중견 시인 김혜순을 택했다. 1979년 등단한 김 시인은 자기반복을 최소화하며 늘 새로운 시적 탐구를 계속하는 시인으로 꼽혀왔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슬픔치약…’은 그의 열 번째 시집이다.

‘우 다음엔 울이라고/세상에 가득 찬 수학이 출몰하는 밤/존경하는 시인님들은 아직 죽음의 탯줄에 매달려 계시고’(‘우가 울에게’) ‘길에서 집에서 머리채 잡혀/실종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해파리처럼 젖은 머리를 내리고 물속 땅속 어디에 묻혀 있을까’(‘책 속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여자처럼’)

우울의 ‘우’와 ‘울’을 쪼개 순차적으로 돌아가는, 틀에 박힌 세상을 꼬집고, 투명한 해파리를 통해 머리를 풀어헤친 불행한 여인을 응시한다. 시인은 낯선 시어들이 가득한 ‘김혜순 월드’에 대한 초대장으로 이런 인사말을 남겼다.

‘침묵과 비밀, 그 무궁한 풍부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즐거움! 내가 또 이 부재의 비밀을 당신에게 투척하니 흡입하시어 부디 궁핍하시길.’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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