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취재 일지]<5>2011년 9월 26일 ~ 10월 25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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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로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비행에 나선 대원들을 동행 취재하고 있는 본보 이훈구기자가 5번째 현지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이훈구기자의 취재일지를 게재합니다. 산악지대에 있어 통신시설이 없는 만큼 이동하는 현지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틈틈이 며칠간의 일지를 올리고자 합니다.》
인도 히말라야를 날다. 두 달간의 파키스탄 카라코람과 히말라야 비행을 마치고 인도로 건너 온 x-히말라야원정팀원들이 인도 비르(Bir)에서 프랑스,러시아,오스트리아 등 전세계 패러글라이더들과 함께 나래를 펼치고 있다. 비르는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남쪽의 작은 마을로 300여명의 전세계 패러글라이더들이 모였다. 인도 비르=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인도 히말라야를 날다. 두 달간의 파키스탄 카라코람과 히말라야 비행을 마치고 인도로 건너 온 x-히말라야원정팀원들이 인도 비르(Bir)에서 프랑스,러시아,오스트리아 등 전세계 패러글라이더들과 함께 나래를 펼치고 있다. 비르는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남쪽의 작은 마을로 300여명의 전세계 패러글라이더들이 모였다. 인도 비르=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제 인도 히말라야에 진입했습니다.”

사실상 히말라야의 출발점인 낭가파르밧에서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대원들은 9월26일(월/46일째)에서 10월5일(수/55일째) 오전까지 파키스탄 북부 훈자에서 마지막 비행을 하며 파키스탄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낭가파르밧에서 인도로 이어지는 히말라야산맥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경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두 나라는 본래 같은 나라였지만(영국령 인도)였지만 1947년 해방과 동시에 종교문제로 분단되었다. 파키스탄은 국교가 이슬람교며, 인도는 힌두교 신자가 대다수다. 그 이후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남북한 못지 않게 긴장관계와 전쟁이 계속됐고, 세차례의 큰 전쟁끝에 카슈미르지역이 인도에 귀속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으로 인도에 귀속된 카슈미르(Kashmir)지역은 파키스탄에 수많은 이산가족을 낳았고, 아직까지 양국 국경엔 수많은 군대가 서로 대치를 하고 있다. 카슈미르 지역엔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는 수상(水上)도시 스리나가르(Srinagar)와 옛 불교왕국인 라닥왕국의 수도인 레(Leh)가 위치해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 어느 곳보다 험난하고 위험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가장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옛 모습들이 보존돼, 지금은 관광지역으로 가장 인기있는 인도히말라야의 핵심지역이다.

원정대가 가야 하는 낭가파르밧 너머 히말라야 지역이 바로 그 곳이다. 바로 낭가파르밧 너머를 가기 위해 대원들은 인도국경을 통해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현재 열린 육로 국경은 와가보더(WAGAH BORDER)와 두 개의 기찻길이다. 원정대는 10월5일 파키스탄 북부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수도 이슬라마드(훈자에서 이슬라마드까지 차로 30시간)를 거쳐 라호르로 이동(차로 6시간)한 후, 차로 40분 떨어진 와가보더(Wagah Border)에 통해 인도에 들어가 다시 잠무 카스미르방향으로 들어가 인도쪽 히말라야산맥으로 이어가야 했다.

10월6일 이슬라마바드,10월7일 파키스탄 라호르를 거쳐 와가보더에 도착했다.

대원들은 와가보더에서 벌어지는 양국 군인들의 국기하강식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 곳 분단현장의 국기하강식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군인 세러머니 중 하나다.

양국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국민들과 관광객들이 밀집한 가운데, 인도,파키스탄 군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과장된, 때론 웃음나오는 제식동작과 함성으로 경쟁을 하며 국기하강식을 한다. 양국 국민들의 구호소리와 관광객들의 신기한 눈길이 혼합돼, 비장한 국토분단현장에서 가장 흥겨운 축제분위기가 한 시간 가량 연출된다. 분단 상황과 역사는 판이하지만, 한국인이라면 결코 우습게만 지켜볼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 판문점 DMZ도 이런 관광상품을 개발하면 어떨까하는 엉뚱한 상상도 잠깐 해본다.


◆10월8일(토/58일째)

파키스탄-인도국경을 빠져나오는데 세관의 감시가 심하다. 장비가 많은 대원들은 한참을 지체하며 짐검사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지체할 틈 없이 스리나가르까지 달리고 달렸다. 비행팀 박정헌대장과 홍필표, 함영민대원은 맘이 급하다. 30여차례가 넘는 파키스탄에서의 비행들, 며칠씩 차를 달려 먼 길을 돌아가면서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지만,다음 히말라야산맥 비행을 이어가야 한다.
◆10월9일(일/59일째)

‘동양의 베니스’ ‘Almost Heaven'이라고 스스로 홍보하는 수상도시 스리나가르(Srinagar)에 도착. 달호수(Dal Lake)위에 1400여개의 수상호텔(House Boat)들이 호수 끝에 죽 늘어서 있다. 짧은 기본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상인들의 끈길긴 호객행위가 기분나쁘진 않다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곤돌라모양의 배, 시카라(Shikara)를 타고 하우스보트로 이동한다. 화려하게 치장된 배 위에 만든 작은 집이다. 밤 11시에야 도착한 비행팀은 다들 녹초가 돼 이 곳에 여장을 풀었다.

애초 비행팀은 파키스탄에 위치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낭가파르밧과 가장 가까운 이 곳에서 첫 출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곳에서의 비행조건은 생각한 것보다 심각하다. 아니 위험하다. 스리나가르에서 레(L도)가는 길 전체가 비행금지구역이다. 스리나가르 자체가 국경도시고, 도시를 잠깐 벗어나도 군부대가 나오고 또 나온다. 우리의 강원도 전방부대만큼 긴장감이 심하다. 12억(?) 인구와 영토를 지키려는 수많은 군부대는 불교왕국이었던 라닥지방의 수도 레(Leh)까지 이어졌다. 수많은 군부대를 지나치면서, 함영민대원은 ”여기서부터 비행을 그래도 강행하려 했는데, 잘못하면 바로 하늘위에서 총맞아 떨어지겠다”며 한숨을 쉰다.
◆10월10일(월/60일째)

아침, 박정헌 대장이 갈 길을 서두르자며, 재촉한다. 새벽 수상시장을 잠깐 둘러보고 샌드위치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Sonamarg-->Drass-->Kargil을 거쳐 옛 불교왕국 라닥의 수도 레(Leh 3358m)를 향해 달리고 달린다. 모두 국경선 아래를 따라가는 긴장의 현장들이다, 일부 마을(Drass)엔 파키스탄과의 전쟁 때 생긴 총탄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곳 사람들의 얼굴생김새가 우리가 접해 온 인도인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티벳인들이다. 인도지만 인도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친숙한 느낌마져 든다. 힌두교의 흔적은 좀처럼 찾기 힘들고, 이슬람사원이 가끔 눈에 띄더니, 레쪽에 가까워 질수록 티벳불교사원 곰파(Gompa)들이 언덕위에 우뚝 서있다. 기도문이 적인 빨강,파랑 노랑의 깃발, 룽다와 불교탑인 스투파(Stupa)가 가는 마을마다 보인다. 티벳인들은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이다.

두 번째 놀라운 점은 지금껏 본 파키스탄 거칠고 우람한 히말라야 지형과 달리 그 형태가 상대적으로 덜 거칠며 지형이 매우 특이하고 아름답다. 곳곳에 심어진 포퓰러나무 숲은 온통 노랗게 물들어 지구상에 남아있는 지상낙원을 연상케 한다.

세 번째는 4000m,5000m가 넘는 이 험한 곳까지 상당부분이 포장되어있다는 것. 파키스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간접시설(기반시설)이 잘 꾸려져 있다. 최근 인도의 놀라운 경제성장률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11억5000만명(2008년 인구조사)의 대국, 아시아에서 두 번째 큰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 그래도 하루에도 두 세 번은 산사태를 만나 끊어진 길 위에서 긴급복구공사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래도 이 천길 낭떠러지 연속인 오지에서 중장비를 공급해 끊어진 길을 재빨리 복구하는 국경 공병대들이 고맙기만 하다.
◆10월11일(화/61일째)
다시 황혼녘에 레에 도착했다. 원정대의 비행일정이 예정된 케이롱(Keylong:히말차 프레데시지역:지도참조)으로 기기 위해서는 레를 거쳐가야 한다. 마지막 고개길위에서 바라 본 고요한 불교왕국의 수도 레(Leh)!

히말라야의 설산들이 도시 뒤로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옛 불교왕국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가득 차있는 곳! ‘Little Tibet,이라는 별명답게 이 곳 왕이 살았던 궁궐은 티벳 라사의 포탈라궁과 형태가 흡사하다. 1962년 스리나가르에서 레까지 고속도로(?)가 건설 된 이후에도 외부세계와 단절돼 외따로 살아오다가, 1974년부터서야 관광객에게 개방돼 고요한 불교왕국의 흔적을 도시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인도지만 인도같지 않은 마을. 티벳인과 인도인이 공존하는 곳. 비르는 달라이 라마의 망명정부가 있는 맥그로드 간즈에서 차로 두시간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남쪽의 작은 마을이다. 이 곳에서 300여명의 전세계 패러글라이더들이 모였다. 인도 비르=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인도지만 인도같지 않은 마을. 티벳인과 인도인이 공존하는 곳. 비르는 달라이 라마의 망명정부가 있는 맥그로드 간즈에서 차로 두시간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남쪽의 작은 마을이다. 이 곳에서 300여명의 전세계 패러글라이더들이 모였다. 인도 비르=이훈구 기자 ufo@donga.com

◆10월12일(수/62일째)

아침 이곳 카슈미르지역을 벗어나 히말라야 산맥 남쪽면에 있는 첫 인도 비행 목적지 케이롱(Keylong)을 향해 떠나다. 여기부터는 히말차 프라데시지역이다. 타그룽고개(Taglung Pass 5328m)를 건너 차는 히말라야 산중을 달리고 달린다. 라차룽고개 중간중간 ‘당신은 차로 갈 수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 높은 고갯길을 지나고 있습니다’라는 푯말이 서있다. 사르쵸(Sarcho 4150m)라는 산중 길 옆에서 대원들은 텐트에서 눈을 붙인다. 머리가 띵하며 기분이 좋지 않다. 사실 레에 도착하고부터 고소증세가 시작됐지만 밖으로 쉽게 표현을 못했다. 안색이 안 좋은 걸 알아 본 대원들이 가끔씩 안부를 묻는다. 환자는 기자 뿐이 아니다. 홍필표대원도 감기를 앓고 있고, 홍성준 촬영감독과 행정을 도맡아 살림을 꾸리는 막내 김민수대원도 목감기,코감기,몸살로 표정들이 안좋다. 홍성준 촬영감독은 “지금껏 회사일로 장기출장을 많이 다녔지만,6개월 출장이 처음이라 힘들다”고 말한다.

사실 많이 힘들다는 산악원정조차 두달, 길어야 세달이다. 서울에서 많은 산악인들로부터 장기간의 간난신고 끝에 한국에 돌아간 후 ‘평생 친구되기 아니면, 평생 원수되기’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렇다! 장기원정이 늘 그렇듯이 남자들 8명이 6개월 동안 한솥밥을 먹고, 웃고 울고 떠들고,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두 달이 넘어가면서 몸들이 다들 골골하다. 때론 마음도 지쳐 자칫 사소한 농담도 작은 언쟁으로 번질 정도로 민감하다. 오히려 식사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더욱 조심하는가 하면, 그런 심각한 분위기를 애써 피하려 사소한 유머들을 각자 동원하기도 한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하곤 한다. 모두들 가족과 가까운 이들을 더욱 그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홍필표대원은 “내게 있어, 이번 원정의 최대 의미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이다. 세계 최초, 최장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원정이라는 타이틀도 중요하지만, 더 소중한 게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패러글라이딩을 전업으로 하면서, 교사로 일하는 아내와, 두 딸에게 시간을 같이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미안했다고 한다. “이번 원정을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주말마다 패러글라이딩에 몰입한다며 시간을 같이 못했던 자신을 가족들이 좀 더 인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10월14일(금/64일째)에서 10월18일(화/68일째)까지 비행팀은 히마찰 쁘라데쉬(Himachal Pradesh)지역에 있는 산중마을 케이롱(Keylong:마을 해발고 3348m)에서 패러글라이딩,승마,래프팅 등 레포츠로 알려진 마날리(Manali)까지 비행을 했다.

드디어 케이롱이란 산중 마을에서 인도히말라야산맥 위로 처음 나래를 펼쳤다. 첫 비행을 마친 박정헌 원정대장은 “파키스탄에서는 궃은 날씨와 강한 바람, 고산등반에 대한 어려움 때문에 매우 힘들었다. 이제 두 번째 나라 인도로 이동하면서 인도히말라야 산맥을 가로지르는 중간단계에 들어갔다. 다시 새롭게 대원들과 의지를 다지면서 시작하고자 한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제대로 된 크로스 컨트리비행을 감행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밝혔다.

히말라야 원정 중 사고로 손가락 8개와 발가락까지 잃고 고산등정을 중단해야 했던 박대장은 이제 패러글라이더로 새 인생을 꿈꾸고 있다. 그에게 산악인으로서의 삶과 패러글라이더로서의 삶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둘 다 남들이 하지 않은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점은 똑같다. 그런데, 산행이 정상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올라가며 자연과의 조화속에 도전하는 과정이라면, 패러글라이딩은 하늘 위에서 여러 기상상황을 둘러보며, 순간적으로 판단해 대처해야 하는 어려운 점이 있다. 고산등반 중 죽을 것만 같이 지치고, 힘들면 곧바로 자신의 의지로 내려 올 수 있지만, 패러글라이딩은 하늘에서 있을 수 있는 갑작스런 기상변화 때문에 와류(혹은 터뷸런스)와 강한 열기류에 순간적으로 휘말릴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다”고 설명했다.

17일 한 대원은 로탕고개(Rohtang Pass3978m)에서 출발해 10km 떨어진 꿀루(Kullu) 계곡까지 순항했다가, 바로 옆산에서 강한 먹구름과 함께 강풍이 불어오자, 비상착륙을 시도했다. 파일롯은 온통 돌밭들이 펼쳐진 악조건 속에서 가장 안전한 사과나무를 선택해 충돌했다. 다행히 사과나무의 뿌리가 지반이 약해, 거꾸로 비행대원은 다치지 않고 사과나무의 뿌리가 통째로 뽑혔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위기의 순간이었다. 파일럿은 비행전날, 위성자료등을 통해, 비행당일의 풍향,풍속,가스트(일정시간 내 최대풍속과 최저풍속의 중간값: 가스트 숫자가 클수록 기상변화가 심해 비행이 부적절) 등을 면밀히 고려한다. 열기류가 발생하면서,바람이 강하지 않을 때가 비행최적 조건이다. 이 모든 걸 고려해도,비행 순간순간 변수들이 많다.

며칠 전에도 비르(Bir : Manali에서 180km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사고가 있었다. 패러글라이딩 국제대회가 열리고 있는 그 곳에서, 이스라엘에서 온 여성 패러글라이더가 비행 중 추락해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이다.

갖가지 심리적 물리적 한계 속에서도, 원정대는 한 발 한 발 전진하며 순항하고 있다.


◆10월19일(수/69일째)

저녁식사 중 박정헌 원정대장이 얼굴표정이 순간 일그러진다. 가까운 산악계 지인으로부터 받은 문자를 보고나서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등정한 산악인 박영석씨 일행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영석대장은 본사와도 많은 탐험을 같이 해 왔고, 대원들 중 상당수가 인연이 있었다. 우리 원정팀과 히말라야에서 시간이 잘 맞으면 만날 수 도 있겠다고 이야기도 했었다. 같은 히말라야 땅에 머물러 있는 원정팀에게 들려 온 비보를 듣고, 모두들 침묵 속에 혹 있을 수 있는 생환소식을 빌며 술잔을 기울였다.

◆10월20일(금/70일째)

아침 마날리 온 마을이 시끄럽다. 힌두의 종교의식(푸자)행렬이 마을 전체를 돌아다닌다. 전설(?)에 따르면, 이 곳은 인도 전역의 힌두신들이 다 모여 명상을 하는 신성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꿀루계곡은 ‘신들의 계곡’이라고도 불린다. 이 마을은 불교와 힌두가 혼합돼 있다. 히말찰 프레데시 지역 어딜가든 우리와 비슷한 티벳인들과 인도 원주민들이 공존하고 있다.
다인종,다문화,다종교 이 곳이 인도다.
◆10월21일(금/71일째)

오전 헬기를 이용, 방송다큐팀과 함께 히말라야 주변 지역을 사진에 담았다.
하늘에서 본 히말라야의 광활한 설산과 빙하, 아직 채 얼지 않은 옥빛 호수들!
찬드라 호수(Chandra Lake)의 반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왜 지구 하늘 아래 첫 산,히말라야가 왜 매혹적인지를 절감하다.

1400 마날리에서 180km 떨어진 비르(Bir)로 이동했다.

비르(Bir) 이 곳에서는 지금 국제패러글라이딩대회가 열러 전 세계에서 300명의 선수와 관람객들이 모였다. 일부 대원은 국가대표 경력도 있고,그동안 국제대회를 통해 많은 친구들을 둔 우리 원정대원들은 크로스 컨트리 일정 때문에 대회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패러글라이딩으로 교류해 온 외국친구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일부 현지 파일럿들과 같이 동쪽방향(네팔)으로 비행을 계속할 예정이다.

인도 히마차 프레데시 지역 마날리에서 가까운 히말라야 산맥의 위용. 찬드라호수(Chandra Lake) 옥빛에 비친 산들의 모습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국내 취재진에 의해 처음 촬영됐다고 조종사 설명. 헬리콥터 이용 항공촬영. 인도 마날리=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인도 히마차 프레데시 지역 마날리에서 가까운 히말라야 산맥의 위용. 찬드라호수(Chandra Lake) 옥빛에 비친 산들의 모습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국내 취재진에 의해 처음 촬영됐다고 조종사 설명. 헬리콥터 이용 항공촬영. 인도 마날리=이훈구 기자 ufo@donga.com

10월22일(토/72일째)

비르(Bir). 히말차 프레데시 지역의 작은 마을이다. 마을 입구부터 많은 룽다(기문문이 적힌 빨강,파랑,노랑의 깃발)와 현란한 티벳불교사원이 우리를 맞았다. 이 곳 역시 불교영향이 크고,많은 티벳인들이 살고 있는 인도지만,인도가 아닌 곳! 인구 2500명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 외국 패러글라이더들과 관광객이 300여명이 다니고 있다. 몇 개 없는 숙소는 예약이 꽉 차 이미 동이 났고, 게스트하우스와 민박집도 겨우 거의 차 저녁 늦게야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비르에서 열리고 있는 이 대회는 국제대회지만, 공식대회는 아니다. 그러나, 뛰어난 기상조건과 히말라야산맥 아래 위치한 조건 때문에 많은 유럽인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프랑스,오스트리아,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이스라엘 등 다국적군이었다. 프랑스와 러시아인들이 많았다. 인도의 값싼 물가, 히말라야의 뛰어난 자연경관, 티벳불교 이색 분위기가 매년 많은 관광객들을 부르는 것 같다.
◆10월23일(일/73일째)

저녁때 홍필표팀장의 인도친구이자 패러글라이더인 딜립씨(43)가 찾아왔다. 딜립씨는 8년 전 한국에서 패러글라이더대회가 열렸을 때, 홍팀장으로부터 모든 안내와 환대를 받았다. 홍팀장의 성의를 잊지 않았던지 그는 만나자 마자 우리 말로 “형님”이라며 인사한다.

딜립씨는 2010년 히말라야 산맥 일부인 인도-네팔구간을 크로스 컨트리로 성공한 프랑스출신의 앙트완느씨를 소개했다. 그는 일부 구간을 성공했지만, 파키스탄에서부터 전 구간을 시도해 온 한국팀들에게 놀라움을 표시한다.

지도와 자신의 노트북 영상을 보여주며, 자신들이 지나 온 구간의 지형과 날씨 특성 등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진정한 프로들의 세계는 오히려 서로 경계하는 게 아니고, 서로를 서로 격려해 주고,지원하고 웃어준다. 최근 타계한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에서도 “최고 A급 사람들을 맥킨토시에서 뽑았을 때, 서로 안좋아할 거라고 사람들이 말했지만, 실제로 A급 선수들은 서로 일하는 걸 좋아하며 잘 지냈다.오히려 C급 선수들과 일하는 걸 싫어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10월24일(월/74일째)

마지막 결승날, 오전 비르 마을 뒷산 이륙장(2300m)에 2~3백여명의 패러글라이더들이 운집한다. 선수들은 선수들대로 움직이고, 그냥 즐기는 사람들은 그냥 하늘을 날아 구별은 되지 않는다. 언어는 다들 다르지만,영어로 서로 인사를 나누며 분위기 또한 축제분위기다. 하늘에는 이미 성미 급한 선수들이 이미 올라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우리 원정대도 경기멤버는 아니지만,원정의 한 코스로 이륙장에 섰다.

박대장과 홍필표 함영민대원이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파키스탄 카라코람에서 히말라야 일부 구간을 최초로 크로스 컨트리방식으로 시도해 성공한 세계적인 선수 존 실버스타(영국)씨다. 산악인으로 출발해 패러글라이더로도 이름날린 인물이다. 그는 최고의 패러글라이더답게 매우 활달한 영국인이었다. 그 옆 엔 엊저녁 만나 많은 조언을 준 앙트완느씨가 서 있었다. “작은 시골마을 국제대회장에서, 이토록 세계적인 선수들을 직접 얼굴 보고 만날 수 있을 줄은 예상 못했다”며 박대장은 기뻐한다.

이 날 히말라야의 설산을 바라보며,박정헌,홍필표,함영민 세 명의 대원들은 푸르디푸른 가을하늘 속으로 힘껏 나래를 펼쳤다.

이 날 목표지는 직선거리 50km 떨어진 다람살라(Daramsala). 이 곳을 왕복해 100km에 도전했다. 대원들은 최고고도 4100m를 기록하며 4시간 8분의 비행을 성공했다.

다람살라에서 9km 떨어진 산 중에 맥그로드 간wm(McLeod Gangi)라는 마을이 있다. 바로 티벳 임시망명정부가 있고, 제 14대 달라이 라마,텐진 가쵸(Tenzin Gyotso)가 살고 있는 곳. 달라이 라마는 1950년대 중국의 티벳침공에 항의한 후 인도망명 후 티벳독립운동의 중심인물. 1959년 당시 수상 네루의 배려로 달라이 라마와 티벳 난민들에게 제공한 후 이 곳은 인도속의 또 다른 티벳이 되었다. 평온한 분위기와 달리, 중국의 많은 암살시도로 이 곳 보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름 철저하다.

오후 이 곳을 방문했다. 비르에서 차로 두 시간. 수많은 동서양 관광객과 순례객들로 인도 속 작은 티벳마을은 북적였다. 진붉은 가사를 입은 수많은 티벳승들.

맥그로드 간즈 마을 입구부터 수많은 상인들이 있었지만, 나름 깨끗하고 정돈이 잘 돼있다.
중국의 티벳점령에 항의해 분신하는 승려들과 티벳인들 사진과 격문들, 티벳독립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추모비등이 눈에 띈다. 이 곳 역시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슬픈 역사를 안고 사는 비운의 땅이다.

설마 했던 달라이 라마가 대중들 앞에 나타나 설법을 한다는 벽보안내문을 보았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방문자들의 요청에 의해(On the Request of Korean Group) 강연을 하루 두 번 3일간 한다”는 문귀다.

달라이라마의 강연장에 들어가려면, 미리 여권과 사진 등을 제출해 예약해야 한다. 직접 참석은 못하고 강연 후 경내에 들어갈 수 살짝(?) 있었다. 역시 우리나라 불자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왔다. 우리나라의 국력(?) 불교 순례자들의 열의에 놀랐다.
◆10월25일(화/75일째)

국제대회는 끝났지만, 상당수 외국참가자들은 이 마을에 남아 비행을 즐긴다.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온 팀이 유독 많은데, 대부분 한 달씩 휴가를 내고 왔다. 어제는 비행팀들 사이에 재밌고 아슬아슬한 동영상이 돌았다. 인도 패러글라이더이자 우리 비행팀의 오랜 친구인 딜립씨가 숙소에 재밌는 동영상이라며 가져왔다. 러시아 파일럿 블라디미르의 헬멧에 부착한 소형카메라에 찍힌 것인데, 비행 중 독수리가 달려들어 낙하산줄에 얽혀 못 빠져나와 글라이더가 엉키는 사고영상이다. 그는 위급상황에서 비상낙하산을 겨우 펼쳐 지상착륙했고, 독수리를 묶어버린 줄을 겨우 풀어헤쳐 날려 보냈다.

이 지역엔 독수리들이 많은데, 비행 중인 파일럿 옆에서 같이 곡예비행을 하며 날아간다. 글라이더나 독수리나 같은 열기류를 타고 날아서이기도 하지만, 독수리가 이상한 비행체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 같이 장난을 하며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날아가는 이 매력 때문에 전 세계 패러글라이더들이 이 곳에 많이 모였나보다.

원정대는 26일 최종 장비점검과 식량구입을 하고 27일 다시 동쪽으로 날아갈 예정이다.
티벳불교사원(곰파),형형색색의 룽다,탑(스투파)들, 우리와 흡사한 티벳인들......인도지만 인도같지 않은 히말라야 산들과 마을을 거쳐 원정은 계속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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