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74>오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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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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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복용한 피부미용제… 강장효과 등 약효 다양

오미자(五味子)는 열매에서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열매와 껍질은 달면서 시고, 씨앗은 맵고도 쓴데 모두 합치면 짠맛이 나기 때문에 오미자라고 했다.

열매 하나에서 여러 맛이 나는 만큼 약효도 다양할 것이라고 여겼는지 명나라 때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시고 짠맛은 신장에 좋고, 맵고 쓴맛은 심장에 좋으며 폐를 보호하고 단맛은 비위에 좋다고 나온다.

허준도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오미자는 허한 기운을 보충하고 눈을 밝게 하며 신장을 덥혀 양기를 돋워 준다고 했다. 남자가 먹으면 정력에 좋고 소갈증을 멈추며 기침이 나는 것과 숨이 찬 것을 치료해 준다고 적었다.

원나라 때 몽골 출신 의사인 홀사혜가 쓴 의학서이자 요리책 ‘음선정요(飮膳正要)’에도 오미자가 맵고 달고 시고 쓰고 짠 다섯 가지 약의 성질을 갖고 있는 과실이라며 기운을 돕고 정력을 보완한다고 풀이했다.

이처럼 다양한 약효가 있다는 오미자인데 그중에서도 정력을 높이는 강장효과가 가장 뛰어났던 모양이다. 오미자의 강장효과는 ‘소녀경(素女經)’과 함께 지금은 사라진 고대 중국의 방중술 비법을 적은 ‘동현자(洞玄子)’에도 임상 사례가 적혀 있다고 한다.

중국의 쓰촨 지방인 촉나라 태수로 여경대라는 인물이 있었다. 나이가 칠십이 넘어 성적 능력이 쇠약해졌지만 우연히 묘약을 먹고는 연속해서 아들을 셋이나 낳았다. 하지만 부인이 덜컥 병이 들었다. 칠순이 넘은 남편에게 너무 시달렸기 때문이다.

약효를 경험한 여경대가 이러다 자칫 사람이 상하겠다 싶어 마당에 약을 버렸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수탉이 버린 약을 냉큼 쪼아 먹었다. 그러더니 양기가 솟구쳤는지 옆에 있던 암탉에게 덤벼들어 올라타더니 한편으로는 교미를 하고 한편으로는 머리를 마구 쪼아댔다. 이렇게 며칠을 덤비니 마침내 암탉의 머리가 벗겨져 대머리가 됐다.

이를 본 사람들이 약의 이름을 대머리 독(禿)자에 닭 계(鷄)자를 써서 독계산(禿鷄散)이라고 지었다. 이 약이 동현자에 나오는 전설의 정력제인데 주원료가 오미자다.

이들 이야기에서 보듯 정력에도 좋지만 오미자를 계속 먹으면 피부가 어린이처럼 고와진다고도 했다. 4세기 진(晉)나라 때 사람인 갈홍이 ‘포박자(抱朴子)’라는 책을 썼다. 도교에서 춘추전국시대 이후 전해 내려오는 신선에 관한 이론을 집대성한 책이다. 여기에 신선들이 먹었다는 선약과 불로장생의 비법도 함께 보인다.

포박자 내편(內篇)에 각자에게 맞는 고유의 장수식품을 먹고 수백 살을 살았다는 여덟 명의 신선 이야기가 나온다. 이문자(移文子)라는 신선이 16년 동안 오미자를 복용했더니 장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피부가 백옥처럼 하얗게 변하며 물에 젖지 않아도 항상 촉촉하고 윤기가 돌면서 탄력이 생겼다고 한다.

이런 오미자는 고려에서 나는 것이 최고라고 했다. 5세기 말 양나라 때 도홍경이 주석을 달았다는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에 고려의 오미자가 으뜸이라고 했고 조선후기 역사가인 한치윤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도 중국의 의학서인 ‘명의별록(名醫別錄)’을 인용해 오미자는 고려 것이 살이 많아 최상품이라고 적었다. 우리나라 여자들의 피부가 고운 이유도 까닭이 있는 것 같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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