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흑백영화 주인공처럼… 다크로맨티시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9일 03시 00분


서울서 열린 美엘리 타하리 ‘2011 가을겨울 컬렉션’

‘옷은 그 옷을 입은 여성보다 은은해야 한다.’ 미국 여성들이 사랑하는 디자이너 엘리 타하리의 디자인 철학이다.블랙, 화이트, 세피아, 와인처럼 안 튀는 색으로 여성의 몸을 은은히감싸 안은 선의 미학은 런웨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엘리 타하리 제공
‘옷은 그 옷을 입은 여성보다 은은해야 한다.’ 미국 여성들이 사랑하는 디자이너 엘리 타하리의 디자인 철학이다.블랙, 화이트, 세피아, 와인처럼 안 튀는 색으로 여성의 몸을 은은히감싸 안은 선의 미학은 런웨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엘리 타하리 제공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즐겨 입는 옷으로 잘 알려진 미국 디자이너 엘리 타하리의 ‘2011 가을겨울 컬렉션’이 1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라움에서 열렸다. 엘리 타하리는 이스라엘 이민자 출신의 디자이너로 그의 입지전적인 인생사만큼이나 탁월한 사업 능력으로 미국 패션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내 매장만 600개를 넘을 뿐 아니라 전 세계 40개국에 진출할 만큼 세계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이날 기자가 찾은 쇼장은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 타하리의 가을 감성을 읽고 싶은 이들로 가득 찼다. 쇼장은 엘리 타하리에 무한 애정을 보내고 있는 연예계 대표적인 패셔니스타 김희애, 김남주, 김정은, 이하늬, 박시연 등이 캣워크(패션쇼장의 무대)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엘리 타하리의 2011 가을겨울 컬렉션은 오르골의 몽환적인 멜로디와 함께 문을 열었다. 모델들의 캣워크는 흑백영화 속 원형계단을 내려오는 여주인공의 우아한 발걸음을 닮았다.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넘나들 듯 블랙과 화이트, 세피아(어두운 갈색), 와인색의 음영은 영화 같은 움직임과 함께 펼쳐졌다. 겹쳐입기와 시폰, 가죽 등의 소재의 다양함에서 어우러지는 앙상블은 색채의 깊이를 창조해냈다.

패션쇼의 첫 막을 올린 것은 블랙 의상이었다. 뉴욕 패셔니스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브랜드답게 엘리 타하리의 ‘블랙’ 감성은 시크하면서도 부드럽게 느껴졌다. 케이프 형태의 날개 달린 시폰 블라우스가 막 뚫고 온 한여름의 무더위 후 초가을 날씨 같은 시크한 여성의 스타일을 보여줬다. 화려한 아코디언 주름과 레이스는 블랙이라는 강렬한 색을 한층 부드러운 느낌으로 중화시켰다.

이어진 화이트 의상은 오히려 색상이 가지는 순백의 아름다움과 함께 선을 살리는 디자인을 강조했다. 완벽한 화이트 슈트는 허리선이 높이 올라간 통 큰 바지에 딱 달라붙은 조끼, 그리고 예리한 실루엣의 상의로 구성돼 중성적인 매력을 살렸다.

세피아 의상에서는 가죽과 털의 질감을 적절히 살려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과해 보일 수 있는 털이 적절히 재단돼 크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엘리 타하리가 꼽은 ‘잇(it)’ 색상은 와인색이었다. 마치 1970년대 느낌을 담아낸 와인색의 의상은 글래머러스하면서도 지적인 분위기를 담아냈다.

‘다크 로맨티시즘’으로 명명된 이번 컬렉션은 풍요로움을 안겨주는 털과 화려하게 수놓은 가죽, 풍성한 울, 섬세한 레이스와 우아한 시폰이 주를 이뤘다. 컬렉션 내내 강조된 부분은 바로 허리라인. 최근 몇 년간 허리라인보다 다리 선을 강조했던 스키니 패션 대신 허리에 벨트가 장식된 긴팔 드레스라거나 짙은 와인색의 벨벳 재킷, 흰 여우털 소재의 울코트는 한층 추워진 지구촌 기후를 반영했다. 스웨이드와 가죽 소재로 무릎을 덮을 정도로 긴 핍토(peep-toe·발가락이 보이는 신발) 부츠를 신은 모델들의 워킹도 화려했다.

‘옷은 그 옷을 입은 여성보다 은은해야 한다’는 엘리 타하리의 디자인 철학처럼 여성의 몸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 물 흐르듯 여성의 몸을 감싸 안는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 일에 있어서도 당당한 뉴욕 여성들의 일상을 담은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회사에서 입고 있던 재킷만 벗어던지면 저녁 사교모임에서도 엘리 타하리의 옷 한 벌로 스타일 아이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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