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죄의식 잃은 ‘팬텀’, 기대 저버린 결말

  • 동아일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편 ‘러브 네버 다이즈’ 런던 공연
대본★★☆ 음악★★★☆ 연기★★★☆ 무대★★★★

‘오페라의 유령’ 속편 ‘러브 네버 다이즈’에 등장하는 팬텀의 부하 3인방. 놀이동산의 어릿광대 캐릭터를 그로테스크하게 변형시킨 이들은 웃음과 공포가 뒤섞인 이 뮤지컬의 초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지만 후반부에선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면서 극적 재미도 반감되고 만다. RUG 제공
‘오페라의 유령’ 속편 ‘러브 네버 다이즈’에 등장하는 팬텀의 부하 3인방. 놀이동산의 어릿광대 캐릭터를 그로테스크하게 변형시킨 이들은 웃음과 공포가 뒤섞인 이 뮤지컬의 초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지만 후반부에선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면서 극적 재미도 반감되고 만다. RUG 제공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속편은 잔뜩 기대를 모으게 했다가 흐지부지 끝나고 마는 옛 서커스 쇼를 닮았다. 지난해 3월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아델피 극장(1500석)에서 화려하게 개막한 ‘러브 네버 다이즈’다.

‘오페라의 유령’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직접 제작한 이 작품은 앞부분만 놓고 보면 분명 매력적이다.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흰 가면만 남겨둔 채 사라졌던 팬텀(유령)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코니아일랜드에 놀이동산을 만들어 갑부가 된다. 반면 여주인공 크리스틴을 놓고 팬텀과 삼각관계에 빠졌던 라울 자작은 사업이 어려움에 빠져 경제적 곤경에 처한다. 신분을 감춘 팬텀은 크리스틴과 그의 가족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무대로 초청하고, 라울의 빚을 청산하는 대가로 크리스틴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한다.

밝고 화려한 코니아일랜드 놀이동산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한 세트디자인은 할리우드 영화 ‘배트맨’의 분위기를 풍긴다. 놀이동산의 어릿광대들을 기형적 캐릭터로 변형시킨 팬텀의 부하 3인방도 이런 음산한 긴장감을 빚어낸다.

권태기에 들어선 라울과 크리스틴 부부에 대한 묘사는 웨버가 제작한 뮤지컬 ‘선셋대로’를 떠올리게 한다. 술 취한 라울이 해변가 다리 아래 바에서 결혼생활에 대한 환멸을 노래할 때 이는 절정에 달한다.

웅장하면서도 클래식에 가까운 웨버 특유의 선율은 배트맨과 선셋대로를 합쳐놓은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그러나 한때 라울을 택했던 크리스틴의 마음이 이번엔 팬텀 쪽으로 변덕스럽게 기울며 표류하던 이야기가 크리스틴의 친구였던 맥 지리와 갑작스러운 삼각관계로 변질되면서 아예 난파하고 만다.

크리스틴의 아들 구스타프가 팬텀의 친아들이라는 설정도 작위적이지만 크리스틴이 맥 지리의 총에 맞고 죽는 장면은 더욱 가관이다. 이 때문에 이 뮤지컬은 만들다 말고 갑자기 종결지은 작품 같다는 느낌을 준다.

‘러브 네버 다이즈’의 이런 허술함이야말로 ‘오페라의 유령’의 진가를 재확인시킨다. ‘오페라의 유령’은 이중의 죄의식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매장된 팬텀에 대한 관객의 집단 죄의식과 크리스틴의 입맞춤을 통해 살인마 팬텀이 스스로 눈뜨게 되는 죄의식이다.

‘러브 네버 다이즈’에선 이 죄의식이 실종된 채 팬텀을 ‘사랑의 화신’으로만 그리려 했다. 그래서 전작에선 팬텀과 팽팽한 균형을 이뤘던 라울이 이번 작품에선 볼품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작곡가이자 제작자인 웨버가 팬텀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자아도취에 빠져 원작이 지닌 원초적 미학을 너무 쉽게 간과했기 때문이다.

20여 년 만에 완성된 속편의 제목은 맥아더 장군의 연설로 유명해진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를 연상시킨다. 아마도 ‘팬텀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임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웨버가 팬텀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이를 다시 사랑(러브)으로 대체하는 순간, 작품의 침몰은 이미 예정된 게 아니었을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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