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中민요 접목 앨범낸 옌볜출신가수 은희지 씨 “아시아인과 통할 노래가 꿈”

  • 동아일보

중국과 북한, 한국에서 배운 각기 다른 창법을 토대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펼치기 시작한 가수 은희지.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중국과 북한, 한국에서 배운 각기 다른 창법을 토대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펼치기 시작한 가수 은희지.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가수 은희지(34)가 최근 발표한 싱글 음반 ‘가시리’는 색다르다. 작곡가 류형선 씨의 창작곡인 ‘숲’에서 그는 가야금과 피리, 기타와 베이스 등 전통 악기와 서양 악기가 어우러진 반주에 맞춰 감칠맛이 느껴지는 서도소리 창법으로 노래하다 고음의 정통 성악 소프라노를 연상시키는 맑은 소리로 후렴구를 마무리한다.

마무리 부분은 현대 중국과 북한의 민가(民歌) 가수들이 자주 구사하는 창법이지만 한 가수가 전통 민가풍의 곡을, 그것도 하나의 노래에서 전혀 다른 창법으로 부른 선례는 없다. 중국 옌볜(延邊)과 북한, 한국에서 두루 민가를 공부한 그의 독특한 이력이 없으면 쉽지 않은 시도다.

“한국 전통 민요는 자연의 소리에 가까운 진성(眞聲), 탁성(濁聲)의 창법으로 부릅니다. 중국과 북한의 민가 창법은 성악의 벨칸토 창법처럼 높고 곱죠. 두 방식은 호흡법이 달라요. 악기로 치면 마치 피아노와 해금처럼 다르죠.”

옌볜에서 태어나 유치원 시절부터 가야금과 장구를 시작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중국 소수민족 예술 콩쿠르에서 한국 남도 민요인 ‘새타령’을 불러 민요부문 금상을 받았다. 이 ‘민요 영재’는 옌볜예술고를 거쳐 옌볜예술대에서 민요를 전공하면서 중국의 경극, 북한 민가에까지 관심 분야를 넓혀 베이징(北京)과 평양을 오가며 공부했다. 2001년에는 민요의 뿌리를 찾아 한국 중앙대 음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평생 익혀온 창법은 한국 전통 민요를 배우는 데 방해가 됐어요. 중국과 한국 선생님들이 모두 말렸죠. 둘 다 하려다가는 ‘악기’ 망가진다고요.”

하지만 그는 꺾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배워온 것을 다 버리자고 마음먹었죠. 꼬박 1년을 연습실에서 한국 민요만 따라 불렀어요. 목도 쉬고 음정도 불안해져 ‘이러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도 못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운 순간도 많았죠.”

다행히도 생각보다 빨리 결실을 보았다. 2003년 전국서도소리 경연대회에서 일반부 금상을 받았고 그해 말 경기 안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안산시립국악단 정기연주회에선 처음 한국 무대에도 섰다. 2004년 옌볜 출신의 음악 유학생들을 모아 ‘아리랑 낭낭’이라는 국악 그룹을 결성해 이듬해 같은 이름의 국악 음반도 냈다.

현재 중앙대 한국음악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그는 지도교수인 인간문화재 김광숙 서도명창에게 “열심히 해서 빨리 명창 돼라”는 말을 들을 만큼 궤도에 올랐다. 명창이란 평생 한 우물을 파야 이를 수 있는 경지다.

하지만 그에겐 다른 꿈이 있다. 아시아 지역에 두루 통하는 노래를 하고 싶다. 현대와 전통, 남과 북을 아우르는 이번 싱글 앨범은 그 목표를 향해 뗀 첫걸음이다.

“아시아 각국의 전통 음악에는 겉으론 달라 보이지만 공통적인 부분이 있어요. 전 아시아의 어떤 나라 사람이 들어도 이질적으로 느끼지 않을 노래, 뿌리는 전통에 두지만 대중적인 감성을 담아내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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