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케냐 남부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서 관광객들의 사파리 전용차량을 옆에 두고
사자 떼가 물소 한 마리를 잡아먹고 있다. 2 케냐 산 국립공원의 초원에서 얼룩말들이 풀을 뜯어 먹는 모습. 3 케냐 중부 나쿠루 호수에 한꺼번에 수백 마리의 펠리컨이 날아왔다. 4 마사이마라 지역에 사는 케냐 원주민 마사이족이 소의 목 부위에서 피를 뽑아 마시는 모습. 소 피는 마사이족이 평소에 즐겨 마신다. 마사이마라·나쿠루=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적도 아프리카의 한여름’ 하면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붉은 태양, 마르지 않는 땀, 또는 열사의 사막…. 하지만 케냐에선 이 모든 것이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요즘 이 나라의 기온은 섭씨 20도 안팎이다. 한밤은 물론이고 낮에도 바람막이 점퍼가 필요하다. 사륜구동 차량을 몰고 길을 헤매기에, 맹수들의 모습을 분주히 카메라에 담기에 더없이 좋다.
이런 최적의 기후는 독특한 지형 때문이다. 케냐는 국토 대부분이 고지대다. 수도 나이로비는 해발 1700m.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케냐 산(해발 5199m)이 있고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산도 국경에 접해 있다. 연중 무더운 해안가인 몸바사 지역만 피한다면 내내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케냐에 오는 또 하나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동물이다. 거꾸로 말하면 동물을 좋아하지 않으면 케냐 여행이 고되다. 이곳에선 한국으로 치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야생동물들과 황당하게 자주 마주친다. 공원 벤치에서 쉬다 보면 어느새 옆자리에 원숭이가 앉아 있고, 한국에서 동네 강아지가 보이듯 눈앞에 사슴들이 지나가는 식이다. 만약 자연 친화를 표방하는 리조트에서 묵는다면 순식간에 벌레와 새소리에 둘러싸인다. 가끔은 숙소 근방에서도 수풀을 헤치고 지나는 다양한 파충류를 목격할 수 있다. 웬만한 문명사회의 도시인은 적응이 안 돼 잠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나이로비에서 시작해 중부의 케냐 산 국립공원과 나쿠루 호수를 거쳐 케냐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마사이마라로 향하는 7일간의 여정을 달렸다. 도시 간 이동과 사파리는 모두 스타렉스와 비슷한 크기인 10인승 승합차로 했다.
사람들에게 케냐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몇 가지를 꼽으라면 그중에 꼭 들어가는 것이 비포장도로다. 관광지 간 이동을 위해 4, 5시간을 꼬박 차를 타야 하는 것은 기본. 울퉁불퉁한 도로 사정 때문에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는다. 케냐 사람들은 이를 ‘아프리칸 마사지’라고 표현한다. 몸이 워낙 흔들리기 때문에 차에서 편안히 잠을 청하거나 한가하게 책을 읽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다만 차창 밖이 워낙 비경이라 이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차를 타고 달리면 마치 바다로 착각할 만큼 끝없는 초원이 펼쳐지다가도 어느새 아기자기한 분지를 볼 수 있다. 또 하늘과 맞닿을 듯한 고원을 계속 달리다가 저 멀리 이집트에서부터 이어지는 대협곡(Rift Valley)과 마주친다. 케냐 서부를 관통하는 이 협곡은 “신(神)이 아프리카를 동서로 떼어놓으려다 실패한 결과물”로도 묘사된다. 국토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케냐 산은 이 나라 국민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구름과 안개로 시야가 가려지는 때가 많아 여행자들은 봉우리를 멀리서 구경조차 못하고 돌아오는 게 부지기수다. 등산과 하산에 꼬박 일주일이 걸리고 꼭대기는 빙하로 덮여 있다.
사파리는 케냐 여행의 시작과 끝이다. 우리 여정에도 하루에 두세 번씩 다양한 종류의 사파리 일정이 들어 있었다. 사파리는 원래 이 나라 토착어인 스와힐리어로 ‘여행’을 뜻한다.
많은 여행자들은 아프리카만 가면 바로 TV ‘동물의 왕국’을 맨눈으로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러다가 처음엔 사파리에 실망하기 십상이다. “이제 얼룩말은 지겨워. 빨리 표범을 보여줘.” 이런 감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맹수들을 인공적으로 울타리에 몰아넣은 동물원이 아니다. 세계적인 동물 다큐멘터리 제작진들도 치타의 타조 추격 신을 잡기 위해 몇 달, 몇 년을 기다린다.
하지만 조바심을 버리고 마음을 편히 갖다 보면 그토록 꿈꿔 왔던 아프리카 초원의 세계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TV나 신문에서 보던 것은 어차피 비할 바가 못된다. 우린 일주일의 여정 동안 아프리카 사파리의 ‘빅5’(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물소)를 수도 없이 관찰했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선 사자 떼가 검은 물소 한 마리를 뜯어 먹었다. 불과 사파리 차량 10m 앞에서 우린 사자 이빨에 물소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운전사에게 “차량 밖으로 잠깐 나갔다 와도 되느냐”고 했더니 우리 얘기를 엿들은 미국인 관광객이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농담을 한다. 사자와 먹잇감을 나누는 하이에나도 운이 좋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동물과 좀 더 가까이서 교감하고 싶다면 케냐 곳곳에 있는 동물고아원(동물원)을 찾으면 된다. 이곳에선 그리 위험하지 않은 야생동물들을 울타리 밖에 풀어놨다. 새를 보려면 ‘조류의 천국’ 중부 나쿠루 호수로 간다. 펠리컨과 홍학 수만 마리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다.
사파리 여행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철저한 자연주의다. 그래서인지 케냐의 국립공원에선 인공물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도로는 항상 흙길이고, 그 넓은 대평원에 공중화장실 하나 없다. 사파리 관광수입의 일부는 동물 보호에 쓰인다. 운전사들도 인가된 길이 아니면 동물에게 접근하겠다고 초원을 가로지르는 일이 절대 없다. 이들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릴 수 있어서다. 케냐는 동물 외에도 얘깃거리가 많은 나라다. 윌리엄 영국 왕세손은 지난해 10월 케냐의 한 로지(전원에 있는 방갈로식 콘도)에서 케이트 미들턴과 약혼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1952년 아버지 조지 6세의 서거와 왕위 계승 소식을 들은 것도 케냐에서다. 국민의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라 여행자들의 의사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
나이로비·마사이마라=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초식동물들 대이동하는 7, 8월이 여행적기 ▼
케냐 여행의 적기는 7, 8월이다. 수백만 마리의 누(wildebeest), 얼룩말 등 초식동물이 무성한 풀을 찾아 탄자니아 세렝게티 초원에서 마사이마라로 대이동을 한다. 또 이즈음이면 4, 5월 우기가 지나가고 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야외 활동에도 큰 지장이 없다. 치안도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안전한 편에 속한다. 1998년 미국대사관 폭탄테러, 2008년 대선 유혈사태 등 악재가 있었지만 지금은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을 찾아 관광산업이 다시 중흥기를 맞고 있다.
배낭여행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추천하고 싶진 않다. 산골 깊숙이 있는 숙소나 관광지를 렌터카로 일일이 찾아다니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광객들은 대신 사파리와 로지 숙박을 엮은 패키지 상품을 많이 이용한다. 하나투어는 최근 마사이마라, 나쿠루 호수 등을 둘러보는 케냐 일주 8일 상품을 내놨다.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케냐항공(02-317-8710)을 통한 인천∼방콕∼나이로비 구간이 매일 운항된다. 케냐항공은 스카이팀 회원으로 스카이패스에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하다. 비자는 주한 케냐대사관에서 받는다. 황열병 예방주사를 입국 10일 전에 맞아야 하며 만일을 위해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하는 것도 좋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