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시끌벅적 ‘신기생뎐’ 공감할 부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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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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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빌라 안 사오면 없었던 일로 해!”

-SBS TV드라마 ‘신기생뎐’ 중에서

이 시어머니, 고단수다. ‘신기생뎐’ 37회. 결혼을 앞둔 금 원장네 딸 라라는 예비 시어머니와 예단을 상의한다. 라라의 결혼 상대는 금 원장의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라라가 금 원장의 친딸이 아니란 사실을 안 시어머니는 무리한 예단을 요구하며 생짜를 부린다. 20명 가까운 시댁 친척에게 모두 한복 한 벌씩 선물해라, 집에 있는 침대가 낡았으니 매트리스에 프레임까지 새로 싹 바꿔라…. 요구하는 방식도 좀 그렇다. 만났을 때는 예의를 차리더니 헤어지자마자 전화로 일방 통보다. 폭풍같이 휩쓸고 지나가는 예단 요구에 전화 받는 며느리야 “아… 네…” 외엔 할 대답이 없다. 이 시어미니, 그러고도 성에 안 차는지 여자 집에서 20억 원이 넘는 빌라를 사주지 않는다고 난리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한 자릿수 시청률로 시작해 20%가 넘는 시청률을 올리며 선전하고 있는 이 드라마의 마력이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공감의 힘’이다. 아니, ‘저질 드라마’ 인증을 받은 이 드라마가 ‘공감’ 같은 거룩한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고?

먼저 예단으로 아파트도 모자라 호화 빌라를 원하는 시어머니를 보자.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의외로 세상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다. 예비 신부와 신랑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를 뒤져보라. ‘시댁에서 현금 예단 수천만 원을 요구하더라’ ‘여자 쪽에서 집 해오는 건 물론이고 장모랑 처제들한테 전부 샤넬 백에 밍크코트까지 돌리라고 요구해서 남자 허리가 휜다더라’ 등등,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 구체적인 액수와 함께 생생하게 증언돼 있다.

그렇게 따져보면 ‘신기생뎐’의 과격해 보이는 설정은 우리가 분명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일들이다. 아들 결혼 반대하느라 카드며 통장 다 막아버리는 시부모, 어머니 요구에 결혼 날짜 받아놓고도 다른 여자와 소개팅하는 우유부단한 남자, 반려동물을 너무 사랑해서 아들이나 아내보다 강아지를 더 챙기는 남편…. 과장돼 있지만 역시 ‘친구의 아는 사람의 친구가 그랬다더라’는 식으로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다.

‘신기생뎐’류의 드라마는 이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과 ‘뒷담화’들의 집합체다. ‘신기생뎐’은 우리가 주변에서 들어왔던 소문과 인간군상을 바로 눈앞에 전시해준다.

이에 대해 우리는 맞장구치며 욕할 수 있다. 함께 분통을 터뜨릴 수 있다. 게다가 남 이야기만큼 세상에 재미있는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신기생뎐’은 공감의 드라마다. 또 그만큼 세상이 상식적이지 않는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회고발성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젠 이런 드라마에 공감할 구석이 점점 더 많이 생기는 나 자신을 보며 점점 더 세상의 쓴맛을 알아가고 있구나, 혹은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런 드라마들은 대부분 출생의 비밀과 임신으로 모든 비합리와 비상식이 별안간 종결되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비현실적 결말로 끝난다는 점이다. 물론 ‘신기생뎐’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더라도 ‘신기생뎐’ 속 ‘저질’ 세상은 현실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그렇다. 원래 세상은 비상식적인 거였다.

s9689478585@gmail.com


수세미
동아일보 기자. 이런 자기소개는 왠지 민망해서 두드러기 돋는 1인. 취향의 정글 속에서 원초적 즐거움에 기준을 둔 동물적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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