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꿈을 꾼다는 건 그 자체로 퍼펙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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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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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운드의 캡틴이 팀을 믿지 못한다면 이 게임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니야.”

―다음 웹툰 ‘퍼펙트게임’

오랜만의 술자리. 거나해진 선배가 딴죽을 건다.

“너 권투 한다며? 아서라. 나이 먹고 웬 ‘주먹질’이냐. 경기 나가게? 몸 다친다.”

걱정해서 하는 말이련만. 괜스레 울컥해 삐죽댄다.

“괜찮아. 형이 형수 몰래 산 전기기타 하나면 몇 년은 배워.”

순간 정적. ‘아차’ 싶은데, 역시 형이 어른이다.

“흐흐, 그건 그냥 기타가 아니야. 날 변신시켜주는, 세일러문의 마술봉이야.”

그러자 딴짓하던 후배 놈이 툭 내뱉는다.

“형, 그럼 치마 입고 기타 쳐?”

‘퍼펙트게임’은 야구 만화다.

제목 자체가 야구용어다. 선발투수가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는 승리. 한국 프로야구 30년 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영광. 말 그대로 ‘완벽한(perfect) 경기’다.

하지만 이 만화, 그런 완전무결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도 주야장천 백수였다 겨우 취직했다. 그가 속한 재래시장 상인들의 동네 야구모임, 그 ‘사회인 야구’가 작품 소재다.

내용도 거창하지 않다. 하위 리그에선 꽤 잘나갔던 팀. 하지만 통합된 1부 리그에서 현실의 벽에 부닥친다. 매번 9명 엔트리 채우기도 급급한 실정. 조직적으로 훈련 잘된 대기업 동호회를 이길 리 만무하다. 연패를 거듭하던 중, ‘거금’ 200만 원이 걸린 여름 맞이 토너먼트 대회가 열린다. 무패를 자랑하는 최고의 팀과 2차전에서 맞붙는데….

사회인 야구. 사실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가보면 가관이다. 한때 미사리 리그에 몸담아 봐서 안다. 삼진보다 포볼이, 안타보다 에러가 많다. 공은 저기 있는데 혼자 만세를 부른다. 땅볼 타구 겁나 쓱 피하기도 한다. 한창 경기하는데 일 있다고 집에 가고. 한 번은 구경 왔던 친구 부인이 진지하게 물었다.

“저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퍼펙트게임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하긴 시장에서 생선 파는 상인, 저녁마다 돼지껍데기에 소주 한잔해야 하는 직장인. 그들에게 메이저리그를 기대할 순 없다. 그래서 부인들은 더 못마땅하다. 금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뭔 영화를 보겠다고 주말마다 기어나가는지. 그 정성으로 가족을 챙겼으면. 맞다. 맞는 말이다. 백번 지당하다.

하지만 그 철없는 어른들의 가슴엔 뭔가가 있다. 나름 열심히 사는데 왠지 갈수록 뒤처지는 기분. 늘어난 뱃살만큼 쌓여가는 피로. 어느덧 꿈이란 말은 사치처럼 느껴지고…. 만화 속 시장 상인들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누구나 옛 시장의 낭만을 얘기하지만 막상 대형마트가 밀려드는 현실엔 무덤덤하다. 어쩌면 그들의 방망이질은 그 갑갑한 삶을 향한 작은 악다구니가 아닐는지. 맘 한구석에 자라다 만 ‘소년’을 위한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그들의 야구는 가볍지 않다. 실수투성이면 어떤가. 거창하지 않아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을 믿고 뭔가에 빠져드는 그 순간. 설령 치마 입고 기타 칠지언정, 꿈은 언제나 존중받아야 한다. 토너먼트에 초대된 ‘과거의 국보급 투수’ 태철심의 눈물도 그래서였다. 아무 이유 없이 야구를 사랑했던 마음. ‘찌질이’ 군상들의 흙투성이 유니폼에서 그는 초심을 깨닫는다.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야구야.”

물론 현실은 여전히 곤궁하다. 대형마트는 들어설 거고, 생활비는 매달 빠듯할 거다. 야구는, 꿈은 절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자주 잊고 사는 사실 하나. 그 꿈이 밥을 맛있게 한다. 또다시 밥을 버는 힘을 준다. 꿈은 꾸는 것 자체로 퍼펙트하다. 오늘은 비록 삼진만 당할지라도.

“They deserve it.(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

ray@donga.com

레이
동아일보 소속. 첨에 ‘그냥 기자’라 썼다가 O2 팀에 성의 없다고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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