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때론 섬세하게 때론 현란하게… 큰 울림으로 남은 고대 제국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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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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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필하모닉 ‘로마 3부작’
연주 ★★★ 선곡 ★★★★

24일 경기 고양아람누리에서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을 힘차게 재현해낸 경기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구자범 예술감독. 동아일보DB
24일 경기 고양아람누리에서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을 힘차게 재현해낸 경기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구자범 예술감독. 동아일보DB
관현악의 힘찬 포효 속에 2000년 전 로마제국의 함성이 되살아났다. 팀파니의 집요한 리듬은 로마 군인들의 씩씩한 발걸음을 재현했고 현악기들의 날카로운 고음은 원형경기장 군중의 성난 울부짖음을 전했다. 24일 경기 고양아람누리에서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 전곡을 무대에 올린 지휘자 구자범 예술감독과 경기 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로마제국 영욕의 역사를 갖가지 소리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로마의 분수’와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로 구성된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은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관현악곡보다도 오케스트라의 색채감이 뛰어나고 연주효과가 좋은 작품이다. 국내에서 로마 3부작은 비교적 낯선 음악임에도 이번 음악회에 참석한 많은 청중이 음악작품 자체의 화려함에 반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구 감독의 열정적인 지휘와 경기필의 의욕적인 연주가 없었다면 레스피기의 걸작 관현악곡도 그토록 다채로운 음향으로 되살아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로마 3부작 전곡을 암보(暗譜)로 지휘한 구 감독은 오페라를 지휘하듯 작품 전체의 극적인 흐름을 잘 살려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로마의 분수’를 여는 ‘새벽 줄리아 계곡의 분수’에선 미세한 표정 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한 지휘로 목가적인 분위기를 한껏 강조하는가 하면 ‘한낮의 트레비 분수’에선 몸을 사리지 않는 역동적인 지휘로 트레비 분수의 찬란한 물줄기를 눈부시도록 현란하게 재현해냈다. 무엇보다도 ‘로마의 소나무’에서 펼쳐진 변화무쌍한 음악 여정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카타콤에서 울려 퍼지던 기독교인들의 절실한 기도 소리와 아피아 가도를 행진하는 로마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는 연주가 끝난 후에도 가슴속에 울렸다.

때때로 금관악기와 타악기 주자들의 의욕이 지나쳐 현악기들의 주요 선율을 묻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간혹 타이밍이 어긋나거나 밸런스가 깨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사소한 문제였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연주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날 연주는 음악작품의 본질에 다가서 있었다. 구 감독과 경기필의 가식 없는 해석 덕분에 청중 역시 벅찬 감동을 거친 환호로 표출할 수 있었다. 음악 속에서 모두가 마음을 열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최은규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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