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속 삶의 흔적, 묘지명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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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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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내달 17일까지 특별전

①합 모양의 장운행 묘지(1850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②묘를 그려 넣은 홍발의 묘지(1914년). ③벼루 모양의 이교선 묘지(19세기·왼쪽)와 육면체 모양의 조병빈 묘지(1760년).
①합 모양의 장운행 묘지(1850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②묘를 그려 넣은 홍발의 묘지(1914년). ③벼루 모양의 이교선 묘지(19세기·왼쪽)와 육면체 모양의 조병빈 묘지(1760년).
‘화려한 가문의 번쩍거림을 싫어해서/…/이상하고 야릇한 취미는 뼛속까지 버릇이 되어/옛 그릇과 글씨와 그림, 붓과 연적과 먹에 대해서는/깨달음의 가르침 없어도 능히 꿰뚫어 알고/진위를 감별해 작은 착오도 없었다/…/기이한 골동이 닿기만 하면 주머니 쏟으니/벗들은 손가락질하고 양친과 식구는 꾸짖었다/…/늙은 이 몸은 죽음과 종이 한 장 사이니/뼈야 썩어도 좋다면 마음은 궁극에 이르기 어렵기에 안타깝다/하찮은 생졸년 따윈 다 부질없는 것/이름과 자는 말 안 해도 응당 난 줄 알 테지’

18세기 컬렉터 김광수가 쓴 자신의 묘지명(墓誌銘)이다. 묘지는 죽은 사람의 행적과 됨됨이를 기록해 무덤 속에 함께 묻는 것이고 묘지명은 그 내용을 말한다. 김광수는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벼슬길을 버리고 조선시대 대표 컬렉터로 이름을 날리다 궁핍하게 생을 마감한 인물이었다. 자신이 직접 쓴 자명(自銘)이어서 다소 과장이 있겠지만 18세기 수집 열풍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이것이 바로 묘지명의 매력.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묘지명 150여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삶과 죽음의 이야기-조선 묘지명’을 마련했다. 4월 17일까지 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옛 사람들이 일상은 물론이고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 당시 사회 문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1부는 조선시대 묘지명의 역사적 변천과 제작 방법을 보여주는 자리, 2부는 묘지명에 나타난 사연 및 수요 계층 등을 보여주는 자리로 꾸몄다. 2부에서는 특히 ‘묘지명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코너를 별도로 만들었다.

영조는 사도세자 묘지명을 썼다. 여기서 영조는 사도세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의 입장을 옹호했다. 사도세자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의 내용과 사뭇 다르다.

묘지명은 대부분 선비들의 삶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밖으로 사물 이치 드넓게 궁리하고/안으로 천부 본성 철저히 보전하여/말을 하면 영원히 천하의 모범되고/움직이면 영원히 천하의 기준될 만/오직 덕을 벗하고 오직 덕을 빛내고 오직 덕을 본떴네’(17세기 허목이 쓴 정구의 묘지명) ‘공이 평생 많은 기이한 꾀와 다른 계략으로써 처음이 비록 위태로웠으나 마침내 그 끝에는 부절(符節)이 맞는 것과 같았으니 세조께서 매번 칭하기를 공은 나의 자방(子房)이라 하셨다”(한명회 묘지명)

이름 없는 백성의 묘지명도 감동적이다. ‘아아 슬프다. 이곳은 나의 여덟 살 아우 용득이 뼈를 묻은 곳….’ 18세기 어린 동생을 천연두로 떠나보낸 뒤 통한의 심정으로 써내려간 한 평민의 묘비명은 가슴을 찡하게 한다. ‘앞으로 묘를 해치면 재앙이 따르게 되리라’는 경고성 묘비명도 흥미롭다.

묘지명은 자기로 만든 것이 가장 많다. 사각형 판 모양이 대부분이지만 원형, 묘비, 그릇, 벼루, 정육면체, 단지 모양 등 특이한 모양도 있다. 묘지 그림을 그려 넣어 풍수지리적 의미를 부여한 묘지명도 눈길을 끈다. 묘지명의 스토리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는 사실을 절로 느낄 수 있는 전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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