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궁핍했던 그 시절, 맨주먹 신화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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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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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기동 체육관’
대본★★★☆ 연출★★★☆ 연기★★★☆ 무대★★★★

권투의 묘미를 땀내 물씬 나는 아날로그 연기로 그려낸 연극 ‘이기동 체육관’. 사진 제공 시아브릿지 컨텐츠
권투의 묘미를 땀내 물씬 나는 아날로그 연기로 그려낸 연극 ‘이기동 체육관’. 사진 제공 시아브릿지 컨텐츠
사각의 링. 때론 혈투가 난무하는 권투 경기에 대해 노쇠한 관장은 이렇게 말한다. “권투는 정직한 거야. 평등하지. 똑같은 체중에, 똑같은 기술에, 똑같이 빤스만 입고 한판 뜨는 거야.”

그렇다. 한때 맨주먹 하나로 세계를 정복한 사나이들이 있었다. ‘4전 5기’의 홍수환, ‘짱구’ 장정구, ‘작은 들소’ 유명우까지. 궁핍했던 1970, 80년대 맨바닥에서 시작해 이들이 일군 성공 스토리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힘들었지만 ‘노력만 하면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졌다.

지난해 12월 31일 개막한 연극 ‘이기동 체육관’(각색·연출 손효원)은 이런 권투에 대한 로망이 가득하다. 2009년 초연 이후 세 번째 공연. 앞서 열거한 한국 권투 스타들의 성공 스토리도 양념처럼 나온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복싱 경기를 기대하진 말 것.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체육관이 배경이고, 스파링이 전부다. 하지만 한때 우리가 열광했던 권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하고 싶은 말은? 맨주먹으로 시작하는 권투처럼 삶이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것.

마케팅 전면에 배우 김수로(관원 이기동 역), 가수 솔비(여고생 역)가 나섰지만 그들의 비중은 다른 관원들과 비슷한 조연급. 관장 이기동(김정호)과 그의 딸(강지원)이 빚는 갈등과 화해가 극의 주축이다. 혹독했던 선수생활로 지병을 달고 사는 관장은 딸이 선수로 뛰겠다는 것을 막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다. 어디선가 본 듯하다. 가슴 먹먹해질 만한 감동도 2% 부족하다. 아쉬움은 다른 관원들의 코믹 연기나 배우들의 현란한 권투 연습으로 채워진다.

마인하 코치(차명욱)가 삶은 계란을 먹다가 목이 막히자 355mL 맥주를 급하게 들이켠 뒤 “커∼억” 트림하고, “아 머리 아퍼∼”라고 할 때 객석은 뒤집어진다. 반대로 관장 딸은 주먹 쥐고 팔굽혀펴기를 10회 이상 하는 포스를 선보인다. 여배우의 연습량은 ‘단내 날’ 정도였을 것이다. 감탄이 나온다.

마지막에는 모든 배우가 나와 줄넘기, 섀도복싱하는 장면을 보인다. 권투 군무다. “바바밤∼바바밤∼”으로 시작하는 영화 록키 주제곡, ‘고나 플라이 나우’가 울려 퍼진다. 뻔한 설정으로 진부하게도 보였다. 아∼. 그런데 권투와 이 음악이 만날 때 이유 없이 가슴 뭉클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i: 4만4000∼5만5000원. 2월 26일까지 서울 중구 필동3가 이해랑예술극장. 02-548-0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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