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선비를 따라 산을 오르다’ 나종면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6일 03시 00분


산행은 求道의 여정… 자유얻고 나를 찾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을 올라야 한다는 나종면 씨.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을 올라야 한다는 나종면 씨.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산이 그곳에 있어 산에 오른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등산의 이유를 물으면 으레 돌아오는 대답이다. 알쏭달쏭한 이런 말 말고 명쾌한 대답은 없을까.

한학자인 나종면 씨(54)의 책 ‘선비를 따라 산을 오르다’에는 명쾌한 답이 있다. 옛 선비들은 현실을 초월하는 이상향을 찾기 위해 산에 올랐다는 것. 나 씨는 “선인들의 산행은 현실을 부정하고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기 위한 구도(求道)의 여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책은 옛 사람들이 명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록들을 산별로 묶었다. 정조 때 문인 이옥(1760∼1813)이 북한산을 다녀와 남긴 ‘중흥유기(重興遊記)’, 조선 중기의 대표적 문장가인 이정구(1564∼1635)의 도봉산 유람기 ‘유도봉서원기(遊道峯書院記)’,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조호익(1545∼1609)이 묘향산을 기록한 ‘유묘향산록(遊妙香山錄)’ 등이 책에 소개됐다.

옛사람들은 땅의 기운이 모이는 산에 영(靈)이 많다고 생각했다. 입산은 영의 집결지에 들어가는 행위이며 정신적 자유의 실현이었다. 그는 “선비들에게 입산은 현실의 부정(否定)이기도 했다. 산에 오르면 속세의 허상을 버려 내면에서 나오는 희로애락의 정(情)을 응시하고, 참다운 내면을 살펴 정신적 자유를 얻었다”고 말했다.

산에서 돌아오는 것은 현실을 고양시키는 일이었다. 선비들은 ‘속세의 부정’(입산)을 다시 한 번 부정함으로써 현실을 업그레이드시켰다. “17, 18세기 지식인들은 특히 산에 많이 갔죠. 이때 글을 보면 산행 뒤 글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찰이 담긴 글이 많습니다.”

그는 조호익의 ‘유향풍산록(遊香楓山錄)’의 한 절구에는 이런 깨달음이 잘 담겼다고 말했다. ‘푸른 산 두른 속에 작은 동천 열렸는데(浮翠屛環小洞開)/저 멀리 골짝에서 물 흐르는 소리 오네(遠從蒼峽水聲來)/숲 사이로 걸어가자 구름 가리나니(穿林步步雲隨閉)/산 밖의 풍진 세상 몇 겹이나 막히었나(山外風塵隔幾回).’ 이에 대해 나 씨는 “동천이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면서 “동천에 발을 딛고 세속을 돌아보니 자신을 넝쿨처럼 질기게 얽은 인연이 몇 겹인지 보이기 시작한다는 조호익의 심경을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요즘 산행이 즉물적 욕구로 이뤄진다고 비판한다. “산을 사랑하려면 산에 대한 이론이 있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미국에서 들어온 참살이 차원에서 산에 오릅니다. 건강을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산행에 대한 문화적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산을 오른다고 해서 산을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이 없으면 매일 가도 똑같은 산일 뿐이죠.”

그에게 다녀온 산 중에 어디가 깨달음을 얻기에 좋은지 물었다. “서울 근교 청계산이 지기(地氣)가 좋다고 합니다. 북한산도 성스럽고 좋은 산이죠.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히 감화를 받을 수 있는 산입니다. 대도시 바로 옆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게 축복입니다.”

그는 요즘 너무 많은 사람이 산에 올라 산을 망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주말에는 서울 근교 산들이 몸살을 앓아요. 제대로 오를 수 없을 정도죠. 바라보며 가슴 속에 산을 두고 아끼는 것도 산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정상 등정을 목표로 한 산행도 그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상 등정만을 목표로 산을 오르는 것은 산을 물질로 본다는 의미”라며 “그곳에 오르면 내가 마치 엘리트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상에 오르기보다 산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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