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청명한 가을의 운치 행주산성만한 곳 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8일 03시 00분


서울 둘러싼 산들이 병풍처럼… 굽이굽이 한강이 산수화처럼…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산과 주변 풍경. 강매동 들판 뒤로 펼쳐진 암봉산악이 북한산으로 왼쪽부터 백운대 노적봉 나한봉 문수봉 보현봉이 두루 조망된다.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산과 주변 풍경. 강매동 들판 뒤로 펼쳐진 암봉산악이 북한산으로 왼쪽부터 백운대 노적봉 나한봉 문수봉 보현봉이 두루 조망된다.
《뻔하다니? 그러면 뭣 때문에 소개해. 그냥 두지…. 지당하신 말씀. 하지만 잠깐. 아까운 지면에 공들여 썼다면 글쎄, 혹 그럴 이유가 있지는 않은지. 내처 고백컨대 ‘뻔한 여행’은 절대로 ‘뻔하지 않은 여행’이다. ‘상식의 허(虛)’랄까, 지레짐작은 금물. 사물의 깊이를 헤아릴 지식인의 덕목도 아니다. 세상을 뒤집어 보는 지혜, 사물을 내 시각으로 다시 보려는 노력. 뻔한 여행도 같은 여정이다. 뻔한 여행은 ‘뻔할 뻔 자’의 맥 빠진 여행이 아니다. 하마터면 놓칠 뻔한 기념비적인 여행이다. 모두가 뻔할 거라며 비켜간 곳을 찾는 ‘뻔한 여행자’. 나만의 시각으로 찾아낸 개성만점의 특별한 여행이 되리라 확신한다.》
행주산성. ‘아니 갈 데없어 거길 가냐. 핀잔도 들을 만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난 추석연휴 중 날씨 좋은 어느 날. 산성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들이객으로 활기찼다. 하마터면 뻔한 여행객이 될 뻔한 그들. 그러나 내게는 때와 장소를 단박에 읽어내는 선견지명의 타짜 여행자로 비쳤다. 왜. 청명한 가을하늘 때문이다. 태풍에 이은 폭우로, 연방 비를 쏟던 가을장마로 먹구름 드리우고 찌푸리기만 했던 잿빛하늘이 모처럼 열린 그날. 수도권에서 그 파란 하늘과 눈을 맞대기에 행주산성만한 명당은 없었다.

행주산성에 올라보라. 시원스레 탁 트인 사방의 시야에 깜짝 놀란다. 서울근교에도 이런 곳이 있었다니. 감탄할 정도다. 강 건너 김포와 발아래 한강, 주변 고양시 일대 평야를 산정에서는 360도로 둘러본다. 한강의 모습은 더더욱 멋지다. 동쪽의 여의도63빌딩부터 서쪽의 일산대교까지 다리 하나하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다. 강심에서는 어부가 참게통발을 거두고 가끔 예인선이 채취한 모래를 가득 실은 바지선을 끌고 가는 광경도 본다.

산악의 풍광도 이 가을에는 더욱 또렷하다. 북한산 남산 관악산 개화산(서울 강서구) 계양산(인천 계양구) 심학산 고봉산(이상 경기 고양시)…. 마치 성벽처럼 서울을 감싼 산들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그것 역시 360도 파노라마다. 산에 둘러싸인 서울 모습을 온전히 확인하기는 이곳에서 처음이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북한산국립공원이다. 장담컨대 북한산에 오른 이는 많아도 자신이 오른 북한산의 온전한 모습을 한눈으로 확인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게 보고 싶다면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에 올라야 한다. 주차장에서 불과 15분만 걸어 오르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백운대 노적봉 나한봉 문수봉, 그리고 오른쪽 끝의 보현봉까지. 하늘과 맞닿아 산이 허공을 가로로 가르며 내지르는 마루금(능선)이 너무도 또렷하게 두 눈에 아로새겨진다. 남산도 서울타워가 세워진 정상부가 보이지만 아랫부분은 야산에 가려있다.

이 가을, 행주산성을 찾는다면 역시 최고의 찬사는 넓디넓은 높디높은 가을하늘의 풍치가 아닐지. 하늘이 넓다는 것은 그냥 알고만 있는 사실일 뿐, 그걸 진정 가슴으로 느낀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도심 빌딩숲에 가려 조각난 자투리의 하늘만 봐와서다.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 정상, 행주대첩비에 올라 보라. 거기서 만나는 하늘은 전혀 다르다. ‘하늘이 넓구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만큼 공활한 가을하늘이 가슴 벅차게 펼쳐진다. 넓은 평야와 한강,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산 위로.

서울도심에서 불과 15km. 버스로 와도 50분이면 닿는 행주산성에 이런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올가을, 허허한 가슴 채우기에 행주산성만한 곳이 없을 듯하다. 그저 뻔하다 생각지 말고 헛걸음한다고 치고 어디 한 번 행주산성으로 뻔한 여행자가 되어보심이 어떠할지.

글 사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행주대첩비가 있는 덕양산 정상 밑 덕양정 정자에서 바라다본 주변 한강 풍경. 가을하늘 아래로 자유로와 한강을 가로지르는 인천 국제공항철도 가양대교 성산대교, 그 뒤로 멀리 여의도 63빌딩과 쌍둥이빌딩, 오른편으로 관악산 정상이 훤히 조망된다.
행주대첩비가 있는 덕양산 정상 밑 덕양정 정자에서 바라다본 주변 한강 풍경. 가을하늘 아래로 자유로와 한강을 가로지르는 인천 국제공항철도 가양대교 성산대교, 그 뒤로 멀리 여의도 63빌딩과 쌍둥이빌딩, 오른편으로 관악산 정상이 훤히 조망된다.


▲동영상=뻔한 여행-행주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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