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거나 식거나, 사람 속에도 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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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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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씨 장편소설 ‘불’

“소방서 앞 화단에 앉아 있는 소방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고 옷이 흠뻑 젖어 있었어요. 화재 진압을 하고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 소방관이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참 평화로워 보였어요.”

이상운 씨(51·사진)의 장편소설 ‘불’(문학과지성사)은 그런 소방관의 얼굴에서 비롯됐다. 그에게 소방관이란 소설 속 엄마의 얘기처럼 ‘사람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불과 싸우는’ 순수한 전사들이다.

‘불’에서 그는 불과 싸우다 세상을 떠난 소방관 아빠의 흔적을 찾아가는 소년의 여정을 그렸다. 중학교 3학년생인 ‘나’는 커가면서 사람의 마음이란 게 확 타올랐다가 갑자기 식을 수 있다는 것, 따스했다가 뜨거웠다가 차가워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사람 속에도 불이 있음’을 깨달은 ‘나’는 불과 싸우던 아빠가 마지막 순간에 구했다는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엄마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아이를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엄마가 묻어뒀던 과거의 상처와도 대면한다. 막상 찾아낸 아이의 모습은 자폐에 빠진 사태였고 가족의 불화로 불행해 보였다. 그런 아이와 맞닥뜨린 ‘나’는 혼란을 겪으면서 삶의 여러 모습에 대해 생각하면서 성장해 간다.

“소년이 궁금해하고, 묻고, 찾고, 기뻐하고, 부딪치고, 두려워하고, 성찰하면서 자신의 여행을 완성해 가는 것이지요.” 이 성장소설에는 뭔가를 얻기 위해 서로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목숨을 걸고 오로지 불과 싸우는 소방관의 전쟁은 순결하다. 부대끼는 사람들과의 이전투구가 아니라 인생 그 자체와 싸우는 것, 그것이 순수한 삶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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