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기대된다, 한국적 셰익스피어

동아일보 입력 2010-09-07 03:00수정 2010-09-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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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템페스트’
번안 ★★★★ 연출 ★★★☆ 연기 ★★★☆ 의상 ★★★
사진 제공 목화 레퍼터리컴퍼니
지난해 이맘때 한국에선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중국 경극의 문법으로 풀어낸 쉬커(徐克)의 ‘태풍’이 공연됐다. 연극의 무대인 지중해는 남중국해로 바뀌고 밀라노 영주였다가 절해고도로 쫓겨난 마법사 프로스페로는 고대 한자를 연상시키는 황금빛 상형문자가 새겨진 붉은 망토자락을 펄럭이는 중국적 영웅 보부뤄(波布羅)로 변신하지만 그 배경은 어디까지나 신화적 공간에 머문다.

그러나 오태석 씨가 이끄는 목화 레퍼터리컴퍼니의 ‘템페스트’(사진)는 구체적 역사공간을 파고든다. 프로스페로는 5세기 가락국왕인 지지왕(송영광)으로 등장한다. 그를 몰아낸 나폴리왕 알론조는 동시대 신라 20대왕인 자비왕(정진각)이 되고 알론조의 동생인 안토니오는 자비왕의 뒤를 잇는 소지왕(조복래)이 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선 밀라노가 프로스페로가 쫓겨난 뒤 나폴리의 속국 신세가 된다. 이는 5세기 내내 신라의 영향력 아래 있던 가락국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오태석 씨는 신통력을 지닌 법사들이 등장하는 ‘삼국유사’에서 한국적 템페스트의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역사적 배경만 한국적인 것이 아니다. 프로스페로의 충복인 요정 에어리얼은 짚으로 만든 액막이 용 인형인 제웅(이수미)이 되고, 그 아래 공기의 요정들은 허재비(허수아비의 경상도 사투리)가 된다. 지지왕의 요술로 절해고도에 좌초한 자비왕 일행이 환상 속에 고통을 맛보는 장면에선 불교의 팔열지옥(八熱地獄)을 체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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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권은 섬의 원주민으로 프로스페로의 노예가 된 캘리번을 머리가 둘달린 쌍두아(조은아·이승현)로 형상화한 점이다. 원작에서 캘리번이 섬에 표류해 의식을 잃은 사람 밑에 숨어 있다가 머리가 둘 달린 괴물로 오해받는 장면을 원용해 기상천외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이번 무대는 2011년 에든버러 축제 공식 초청을 앞두고 국내관객에게 첫선을 보이는 것. 무대의상을 조선시대 한복이 아니라 신라와 가야시대 의상으로 바꿔주고 한국적으로 번안한 개별 캐릭터의 특징을 좀 더 살려준다면 세계무대에서 각광받을 ‘한국적 템페스트’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으기 충분한 작품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2만∼3만 원. 12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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