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서로에게 스며들자, 스러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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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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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 ‘노마딕 파티’전
■문화위 옛 청사 ‘자치구역 1-130’전

아르코미술관과 다국적 작가 공동체인 ‘나인드래곤헤즈’가 공동 기획한 ‘노마딕 파티’의 전시장. 지구촌 곳곳을 누벼온 14개국 작가26명이 여행, 전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르적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 작업을 선보였다. 고미석 기자
아르코미술관과 다국적 작가 공동체인 ‘나인드래곤헤즈’가 공동 기획한 ‘노마딕 파티’의 전시장. 지구촌 곳곳을 누벼온 14개국 작가26명이 여행, 전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르적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 작업을 선보였다. 고미석 기자
유럽과 한국을 여행하면서 길거리에서 주어온 잡동사니가 흰색 천 위에 얌전히 놓여있고, 한쪽에는 서울의 공기로 채운 비닐봉지들이 모여 있다. 사무실에서 흔히 보는 둥근 탁자를 켜켜이 쌓아올린 설치작품이나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마루와 칸막이도 신기하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9월 5일까지 이어지는 ‘노마딕 파티(Nomadic Party)’전이다. 1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다국적 작가공동체인 ‘나인드래곤헤즈’와 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국제전으로 14개국 26명이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는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를 화두로 삼아 미술관 안팎에서 축제의 장을 펼친다. 하나하나 작품에 방점을 두기보다 모든 작업이 서로 스며들고 소통해 총체예술의 향연을 지향하는 자리다. 장르적 경계와 관습적 표현을 허물면서 여행, 전시, 퍼포먼스 등으로 뒤범벅된 실험적 작업을 볼 수 있다. 02-760-4850

아르코미술관 옆에 자리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옛 청사에서 14일까지 열리는 ‘자치구역 1-130’전 역시 작품의 상호 연관성을 중시한다. 1931년 최초의 한국인 건축가 박길룡(1899∼1943)의 설계에 따라 경성제국대 본관으로 지은 건물에는 서울대 본부를 거쳐 1972년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자리했다. 위원회가 구로동으로 이전한 뒤 청사는 ‘예술가의 집’으로 용도 변경을 앞두고 잠시 비어있는 상태. 참여작가 14명 중 채지영 씨가 기획한 전시는 한국 근현대사의 호흡이 서린 낡은 공간을 신선한 상상력으로 채우며 ‘멋진 고별무대’를 꾸몄다.

○ 끝이 아닌 전시

옛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건물에서 열리는 ‘자치구역 1-130’전. 김형관 씨는 사무실을 파랑 비닐과 색색의 테이프로 덮어 공간이 갖고있는 느낌을 지우고자 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건물이 한 시대를 접는 고별무대로 기획된 전시다.
옛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건물에서 열리는 ‘자치구역 1-130’전. 김형관 씨는 사무실을 파랑 비닐과 색색의 테이프로 덮어 공간이 갖고있는 느낌을 지우고자 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건물이 한 시대를 접는 고별무대로 기획된 전시다.
세계 곳곳을 함께 누벼온 나인드래곤헤즈의 작가들은 미술과 자연, 지역 사람들과 예술가, 작품과 작품 사이를 가로막는 경계를 부수고 포용과 열린 마음을 지향한다. 뉴질랜드의 리듬&퍼포먼스 그룹의 창시자인 필 대드슨 씨는 열기구를 타고 상공을 떠다니는 브라스밴드의 연주 영상을 통해 자연과 음악의 사운드를 융합한다. 미국의 가브리엘 애덤스 씨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아이스크림 만드는 기계로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을 시민에게 나눠주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폐타이어로 만든 연꽃, 일회용품으로 만든 작품은 생태와 환경에 대한 작가공동체의 관심을 반영한다.

이들은 어디든 옮겨가는 곳을 거점으로 삼아 주변 환경에 반응하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온 만큼 전시도 진행형이다. 이번에도 작가들은 전시기간 중 실크로드 여행(8∼17일)을 다녀온 뒤 사막 여행의 경험을 녹여 전시를 완성할 작정이다. 작가 박병욱 씨는 “우리의 전시는 끝이 아니라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이 특징”이라며 “둔황과 타클라마칸을 이동하면서 그곳에서 발견한 미학을 바탕으로 여행의 흔적을 추가해 전시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여행의 기억과 경험은 18, 19일 관객 앞에서 다양한 퍼포먼스와 기존 작업의 변화로 선보인다.

○ 끝을 기리는 전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에 자리한 3층 벽돌 건물 위에는 말 풍선 모양의 흰색 애드벌룬이 떠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용도 폐기된 공간 구석구석에 드로잉과 영상, 사진과 설치 작업이 서로에게 반응하고 간섭한다. 한지로 떠놓은 건물 계단은 사무실에 덩그러니 놓여있고, 헬기에서 촬영한 강남의 풍경이 사진 연작으로 펼쳐지며, 주인이 사라진 위원장실은 온통 파랑 비닐로 뒤덮여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처럼 숨쉬는 전시를 꿈꾸는 두 전시. 작품도 공간도 또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주면서 우리들 역시 현재에 잠시 머물 뿐임을 일깨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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