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발길 닿으면 전시장, 눈길 머물면 예술품

  • Array
  • 입력 2010년 8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본 나고야 ‘2010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0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선보인 일본 현대미술의 대표적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대형 꽃 조각. 올해 제1회를 맞는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3년에 한 번씩 열릴 예정이다. 나고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2010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선보인 일본 현대미술의 대표적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대형 꽃 조각. 올해 제1회를 맞는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3년에 한 번씩 열릴 예정이다. 나고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전시장이 따로 없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도심 거리 곳곳이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일본 현대미술의 거장 구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은 사람들로 붐비는 백화점으로 외출했고, 구사마의 산뜻한 물방울무늬로 장식된 프리우스 자동차는 관객을 공짜로 태워 준다. 유서 깊은 섬유 도매시장에선 낡은 점포와 현대미술이 어우러져 색다른 화음을 빚어낸다.

‘도시의 축제’를 테마로 21일∼10월 31일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 시에서 열리는 ‘2010 아이치 트리엔날레’(예술감독 다테하타 아키라)의 풍경이다. 이번이 첫 회로 3년마다 한 번씩 국제예술축제가 펼쳐질 예정. 아이치예술문화센터, 나고야시립미술관과 함께 조자(長者) 정, 나야바시(納屋橋) 등의 생활공간에서도 대도시의 일상 풍경과 예술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축제를 만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작품들과 더불어 신작을 다수 선보여 첫발을 내딛는 미술축제로서 신선함이 돋보였다. 장르를 뛰어넘어 연극 오페라 등 공연예술을 적극 포용하고 나고야 시를 작품 배경으로 삼은 장소 특정적 작품과 신발을 벗고 들어가 감상하는 작품을 여럿 선보이는 등 지역 특성을 자연스럽게 각인시킨 점도 눈여겨볼 만했다. aichitriennale.jp

○ 일상과 비일상적 풍경의 조화

인도 작가 헤마 우파디에이의 설치작품 ‘Thinkleft, Think right, Think low, Think tight’. 긴장과 혼란이 공존하는 도시풍경이 양 벽면에 펼쳐진다.
인도 작가 헤마 우파디에이의 설치작품 ‘Thinkleft, Think right, Think low, Think tight’. 긴장과 혼란이 공존하는 도시풍경이 양 벽면에 펼쳐진다.
나고야는 도쿄, 오사카에 이어 일본에서 3번째로 큰 도시. 트리엔날레는 2년여의 준비 기간과 약 180억 원의 예산을 들여 탄생했다. 다테하타 예술감독은 “나고야는 온 가와라와 나라 요시토모 등 미술가를 배출했지만 도요타 회사가 있는 곳이란 경제적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다”며 “미술을 통해 도시를 국제적 예술 거점으로 발전시키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전율 넘치는 도시 축제’를 지향하는 행사답게 도시 곳곳을 걷다 보면 평범한 일상과 낯설고 비일상적 풍경이 공존하는 작품을 볼 수 있다. 20여 개국에서 130여 작가가 참여한 이번 행사는 ‘일본 최대 규모의 국제전’. 이 중 구사마는 호박과 더불어 꽃 조각과 대규모 설치작품까지 선보여 상징적 존재로 꼽을 만하다. 지오타 시타루는 투명한 관을 통해 붉은 액체가 흐르는 설치작품으로 인간의 핏줄을 보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마쓰이 시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긴 형광색의 대형 풍선으로 축제 분위기를 띄웠다.

중국 작가로는 차이궈창이 시간의 흐름을 소재로 한 화약드로잉과 영상작품을 내놓고, 장환은 소가죽을 이용한 거인을 선보이는 등 스펙터클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인도의 헤마 우파디에이는 폐품을 활용해 도시의 풍경을 벽 설치작품으로 만들었고, 스위스 출신 ‘라 리보’ 팀은 언어를 유머와 해학으로 비튼 퍼포먼스와 설치작품으로 현대를 풍자했다. 한국 작가의 경우 향을 갈아 나고야의 게이바 이름을 전시장 바닥에 쓴 뒤 전시기간 중 서서히 태우는 설치작품을 낸 오인환 씨와 김홍석 구정아 윤진미 김동훈 씨 등이 참여했다.

○ 시장으로 찾아간 현대미술

섬유 도매시장인 조자 정 지역은 ‘첨단성’ ‘축제성’ ‘복합성’을 화두로 삼은 이번 트리엔날레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도매업자들이 가게와 주차장 등 공간을 흔쾌히 제공한 덕분이다. 큐레이터와 작가들은 1년간 머물면서 시장과 밀착된 작품을 완성했다. 무거운 천을 들어올리기 위해 도르래가 설치된 가게 공간을 활용한 와타나베 에이지의 설치작품 등이 인상적이다.

전반적으로 행사는 스타 작가의 면면을 앞세우기보다 문화를 통해 밋밋했던 도시에 새로운 표정을 입히고, 도시의 일상에서 시민들이 현대예술을 즐긴다는 목표에 충실했다. 그래서 장소뿐만 아니라 소재와 내용도 관객 친화적 작품이 많았다. 호주 출신 핍앤팝은 설탕가루와 플라스틱 등 일상 재료를 사용해 환상의 공간을 꾸며 인기를 끌고 있다. 작은 어촌을 소재로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오롯이 ‘작업’으로 품어낸 시마부쿠의 작품은 소박하면서도 인간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고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